겸허謙虛겸허…
  • 정재모
겸허謙虛겸허…
  • 정재모
  • 승인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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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는 이런 말도 남겼다. `겸손이란 야심가의 위선이거나 노예근성의 비굴이다.’  어떤 계기에, 어느 글에서 한 말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인간의 겸손이란 게 무언가를 노린 허위의 몸짓이거나 줏대 없는 자들의 굽실거림이라고 본 냉소적 통찰에 눈길이 간다.
 `스스로 잘났다고 여겨 타인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명심보감 구절도 겸손하라는 주의이고, 주역 64괘중엔 겸괘(謙卦)도 있다. 교만하지 않는 겸손을 옛사람들은 처세의 수단으로 강조했던 것 같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추기는 몸짓이야말로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인간이다. 인간에게 있어 진짜겸손이란 있을 수가 없고 위장겸손이 있을 뿐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겸손이 속마음과는 달리 위장된 거라는 스피노자의 갈파에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겸손과 비슷한 말로는 `겸허(謙虛)’가 있다.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한 데가 있음’이라는 게 사전의 풀이다. 빌 허(虛)자에 욕심이 없다는 뜻도 있고 보면 나를 비우고 남에게 양보한다는 게 본래의 의미일 거다. 하지만 오늘날엔, 속으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나중을 위해 겉으로 겸손한 척해야 할 형편에 언필칭 끌어대는 낱말이기도 하다.
 19대 국회 원내 거대여당인 새누리당을 제2당으로 끌어내린 4·13총선 이후 곳곳에서 `겸허’ 사태가 났다. 선거에서 패배한 여당도, 여당의 패배 덕에 이긴 야당도 입만 벌렸다 하면 어김없이 `겸허’다. 야당의 겸허하지 않은 `겸허’ 발언은 빼놓더라도 개표 직후 여당대표가 의례적인 어투로 `민의를 겸허히…’ 운운한 데 이어 그 측근 김성태 의원이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또 `엄중한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운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8일 수석비서관회의 때 똑 같은 표현을 했다. 지금 인터넷에 겸허를 쳐보면 그야말로 `천지빛깔’로 겸허겸허겸허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처신하겠다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만 그 속마음까지 깊이 그런 건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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