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옥아, 지팡이를 꼭 잡으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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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아, 지팡이를 꼭 잡으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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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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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는 동화
▲ 서가숙 작가

 할머니의 지팡이

순옥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긴 지팡이 끝을 잡고 다녔습니다.
“순옥아, 꼭 붙잡아래이. 지팡이를 놓치면 니는 밥도 못 먹고 굶어 죽는데이.”
말귀를 알아들었을 때부터 듣고 온 말이라 지팡이를 놓지 않으려고 언제나 꼭 잡고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자 학교에 혼자 갈 수 있는데도
“지팡이를 꽉 잡으래이. 놓치면 죽는데이.”
할머니의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봉사처럼 붙잡고 다녔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면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아이고 선생님요, 우리 아이가 순옥이인데 몇 학년 몇 반인지 아시능교? 야가 어디 있는지 안보입니다. 좀 찾아 주이소.”
처음에는 사람들이 교무실로 모셔가서 말씀 드렸지만 여러 번 반복되자 할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지금 순옥이가 공부시간이니 집으로 가시지요.”
“아이고 선생님요, 고맙습니다. 공부시간인줄 몰랐습니다.”
순옥이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면 쪼르르 달려와서 “순옥아, 너거 할머니가 또 교실마다 찾아다니셔.”
싫었습니다.
할머니는 왜 교실마다 다니면서 창피하게 만드실까? 오지 말라고 해도 가시라고 해도 안 들으시고 공부 마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선생님요, 내 얘기 들어보이소. 순옥이 에미가 젖 먹던 아이를 놔두고 도망갔다 아입니까? 천벌 받지예. 지 아를 버리고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도망갑니까예. 내가요, 죽고 싶어도 아 때문에 못 죽는다 아입니까.”
아무나 붙잡고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욕하는 할머니가 불쌍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제발, 할머니가 창피스러운 얘기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오늘은 또 얼마나 이 교실 저 교실 다니며 자신을 찾아 헤맬까 생각하니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불안하고 가슴 졸였습니다.
지팡이 짚는 소리가 복도에 들리기라도 하면 몸이 굳어버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3학년이 되자 할머니께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내가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는데, 지팡이가 없어서 우짜노”?
“할머니, 혼자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어. 걱정 마.”
순옥은 날아갈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친구들과 마음껏 놀다갈 거야. 난 자유야.”
자유로운 행복도 잠시, 잠결에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순옥아, 지팡이를 꼭 잡으래이.”
“아… 또 지팡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동네사람들이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뤄 주셨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사람들이 오셔서 이것저것 묻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짙은 화장을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습니다.
“네가 순옥 이구나. 많이 컸구나.”
꿈속에서도 부르고 싶었던 어머니였습니다.
“몇 살이니”?
“열 살이요. 3학년입니다.”
“아, 열 살. 무거운 짐이구나.
너는 세상에서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지팡이요.”
“지팡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란다.”
순옥은 할머니를 잊기 위해 할머니의 물건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의 슬픈 일들은 모두 꿈으로 덮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옥은 요양보호사가 되었습니다.
노인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목욕시키고 청소하는 일을 주로 맡아서 했습니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면서도 천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팡이를 꼭 잡고 걸으세요. 지팡이를 놓치면 굶어 죽어요.”
“지팡이를 놓치면 다시 주우면 되지 왜 굶어 죽느냐”?
“그러게요. 그걸 몰랐네요.
아무튼 지팡이를 놓치면 안 되니까 꼭 붙잡으세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걷는 환자 뒤를 순옥은 천천히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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