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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女山에 유폐된 주몽의 꿈, 비류수는 알고 있다중국 新동북공정 현장을 가다- 2.모노레일에 깔린 고구려
모용복기자  |  mozam0923@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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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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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 요녕성 환인현에 있는 해발 820m 오녀산성 정상에서 환인댐 방향으로 펼쳐진 비류수 절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모습.

고구려 왕릉 미창구장군묘, 옥수수밭 자갈더미에 방치
고분내 예술성 빼어난 벽화, 10여년 전께 고분입구 막아

더이상 감상할 수 없게 되고 무덤 주인도 규명할 수 없어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 세운 첫 수도 졸본성은 천혜 요새
한폭 그림같은 비류수 장관 고구려인 웅혼한 기상 느껴
성벽 위 모노레일 공사 한창… 동북공정·돈벌이 수단 전락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무엇이기에 지구촌 이곳 저곳에서 상대방 역사의 부정과 왜곡을 넘어 심지어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전쟁에 혈안인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고 심양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부터 보고 느끼게 될 천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남긴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그 진실을 만나보게 되리라.
동북아지역은 지금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역사전쟁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국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기에 각국은 양보없는 치열한 전장(戰場)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총성없는 역사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현재 전장(戰場)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는 종군기자의 심정으로 역사전쟁의 현장에서 그들이 찬란했던 우리 역사와 조상들의 혼을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생생한 기록을 통해 우리의 대응책과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 중국 요녕성 환인현에 있는 미창구장군묘. 관리가 제대로 안돼 멀리서 보면 무덤 좌우로 잡초가 무성하고 자갈더미가 쌓여있어 작은 구릉처럼 보인다. 오른쪽에 조선족 안내인 박명군 씨가 안내문을 읽고 있다.

  - 壁畵는 옥수수밭에 잠자고
 동북지역은 어디를 가도 옥수수밭 뿐이다.
 지금 차를 달리고 있는 요녕성 환인지역도 탁 트인 넓은 평원으로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가끔 빨간지붕을 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비닐하우스나 창고 등의 건물이 없는 때문이지 유럽풍의 한적한 전원마을을 연상케한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벗어나 환인현 마을로 들어서자 도로는 형편없이 좁아졌다.
 길 양편으로 폐가(廢家)들이 줄줄이 이어져 폐촌처럼 보였는데 차창 너머로 집안을 유심히 보니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안내인 박명군 씨 설명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게으른 성격 탓도 있거니와 사유재산에 대한 관념이 적어 집이 허물어져도 수리하거나 리모델링하지 않고 수년간 그대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지판 하나 없어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곳.
 마을 뒤편으로 어른키보다 큰 사료용 옥수수 밭이 끝나는 지점에 나즈막한 구릉(丘陵)이 나타났다. 미창구장군묘다.
 타원형으로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무덤은 앞에 있는 안내석이 아니면 무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치 방치돼 있었다.
 5세기 무렵 고구려 무덤으로 높이 7.2m, 둘레가 150m가 넘는 대단히 큰 무덤으로서 왕릉급으로 추정되는데 주인을 알 수 없어 장군묘라 부른다고 한다.
 답사전 조사 자료에 의하면 무덤 내부에 벽화가 있다. 지금껏 알려진 다른 고분의 벽화보다 예술성이 빼어나고 화려해 고구려인의 뛰어난 회화기법과 미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신도는 없으며 봉황, 기린마, 삼족오, 용, 사자 머리의 사람과 아홉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이 있고 천장 구석마다 왕(王)자가 씌여 있어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무덤 주인을 동명왕릉으로 비정(比定)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다.
 벽화를 보기 위해 입구를 찾았다.
 울타리를 따라 돌아봤지만 무성한 잡초에 길은 사라지고 대신 돌무더기 나타났다.
 옥수수밭에서 골라내 버린 것인지 아니면 무덤에서 쓸려내린 것을 모아둔 것인지 주민들 손에 아무렇게나 훼손돼가는 고구려 역사의 현주소를 한눈에 느끼게 했다.
 좌우로는 길이 없어 무덤 위까지 올라봤지만 입구는 커녕 그 흔적조차 찾을 길 없었는데 그 이유를 무덤 앞 옥수수밭에서 일하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내부로 들어가 벽화를 구경할 수 있었으며 자신도 직접 벽화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10년 전 중국 정부가 무슨 까닭인지 입구를 막아버려 지금은 벽화를 볼 수 없게 됐으며 그로 인해 무덤을 찾는 사람들 발길도 완전히 끊겨 버렸다고 덧붙였다.
 할머니는 필자가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말을 듣고는 무척 반가워하며 10년 전부터 무덤을 찾는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으며 또 무덤을 보러 한국에서 이 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워했다.
 무덤 주인은 그 규모나 벽화의 내용으로 봐서 고구려 왕일 가능성이 많다.
 벽화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중국정부는 왜 입구를 닫아버렸을까?
 장다리 옥수수밭 속 잡초에 파묻혀 잊혀져가는 고구려 역사를 보니 비애감이 밀려든다.
 입구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리고 벽화가 햇빛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우리 정부와 학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무덤의 주인공을 밝히는 노력도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 수난 당하는 고구려 첫 首都
 환인 시내를 경유해 오녀산성(五女山城)으로 향했다.
 오녀산성은 광개토태왕릉비에 추모왕(鄒牟王)이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곳 오녀산성이 이 때에 쌓았다는 성으로 추정되는 까닭에 고구려 첫 수도 졸본성(卒本城)으로 비정된다.
 환인 시내에서 40분 가량 걸려 주차장에 도착해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80위안, 한화로 약 1만6000원 가량이니 굉장히 비싼 편이다.
 한국인에게는 고구려 첫 수도인 졸본성인 까닭에 큰 의미를 지니지만 사실 관광지로는 그리 볼 게 많지 않은 한낱 산성일진대 이렇게 비싼 요금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녀산박물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5분 가량 산허리를 오르니 산성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나왔다.
 그 수가 1000개에 조금 못미치는 999개라고 한다.
 돌계단은 가팔랐다.
 맨몸으로 올랐어도 중턱에서 숨이 차왔다.
 2000여년 전 고구려인들이 계단도 없는 이 절벽을 군사장비와 생활물자, 건축자재들을 지니고 수십 수백번도 더 오르내렸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그들의 강인함과 굳센 의지에 가슴이 숙연해진다.
 한편 왜 이렇게 험준한 곳에 첫 도읍지를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고구려 시조 주몽이 부여로부터 도망쳐 나와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 영토확장보다 먼저 수성(守成)을 생각했기 때문이 이 곳을 수도로 정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해발 820m의 오녀산성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정상부는 아래에서 볼 때와는 달리 남북으로 길이 1㎞, 동서로 300m나 되는 평탄한 분지형태를 띠고 있었다. 성 안에는 궁전터로 추정되는 대형건축물 터와 주춧돌, 당시 고구려 병사와 백성들의 생명수였던 우물이 남아 있어 지금은 천지(天池)라고 불리고 있다. 
 점장대에 서서 환인댐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비류수(지금의 훈강) 비경이 한폭의 그림같이 펼쳐진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이어지는 넓은 평원, 그 너머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위해 건너왔다는 비류수가 절경을 뽐낸다.
 박 씨는 비류수 너머를 가리키며 비류국이 있었던 곳이라고 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2000년 전 여기서 나라를 세운 고구려인들이 바라보았을 그 강을 바라보며 그들의 웅혼한 기상을 가슴에 품는다.
 그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류수 풍광에 감탄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한국 관광객들을 보며 입장권 1만6000원에 담긴 중국의 책략이 떠올랐다.
 오녀산성에 오기 전 들렀던 미창군장군묘처럼 관광객 발길이 적은 곳은 방치하거나 아예 묻어버리고 오녀산성처럼 돈벌이가 되는 고구려 유적은 적극 개발해 관광상품화 하는 이중적 정책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고구려 첫 수도로 비정되는 중국 요녕성 환인현 오녀산성 정상부에서 인부들이 모노레일 공사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점장대에서 나와 동쪽 성벽쪽으로 향하다 10여 명의 인부들이 철근과 쇠파이프 등으로 건축물 뼈대를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이(奇異)하게 여겨져 “무슨 공사냐”고 물으니 모노레일을 설치하는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성벽쪽으로 내려오면서 길게 뻗은 모노레일 뼈대를 보고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는 거의 완공단계에 있었다.
 한국 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고 입장료를 더 비싸게 받으려는 장사 속셈이 분명했다.
 더욱 통탄할 일은 허물어져가는 성벽을 복원하기는 커녕 성벽을 받침대 삼아 그 위에 모노레일을 깔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와 유적을 어떻게 대하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공사가 완공될 것이고 한국 관광객들은 모노레일을 타고 손쉽게 산성에 오르내리며 비류수의 절경에 감탄을 쏟아낼 것이다. 발 아래로 고구려 성벽이 압사(壓死)돼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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