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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구제는 사람이 해야 한다-‘증평 모녀 사망’비극을 통해 본 우리사회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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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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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가난 구제는 나라(나랏님)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옛날 왕조시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임금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만치 ‘가난’이라는 괴물은 무섭고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였기 때문에 생겨난 속담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가난이 존재한다.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못 사는 사람이 있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굶주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고 탐관오리의 수탈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했기 때문에 서민들은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수 십 년 전만 해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에서도 바가지를 들고 대문을 두드리는 걸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9745달러를 기록했다. 따라서 올해 3만달러를 넘기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GNI 3만달러는 통상적으로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선진국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근래 들어와서는 복지수준이 높은 국가를 선진국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 부르기엔 아직 우리 모습은 초라하다. 수많은 국민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 청년실업, 노인빈곤, 빈부격차, 도농양극화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밑바닥 서민들도 많이 존재한다. 좀 먹고살게 되면서 너도나도 국제원조, 해외봉사 등에 눈을 돌릴 때 정작 많은 우리 국민들은  가난 속에서 삼순구식(三旬九食)하며 하루하루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서는 네 살박이 여아와 엄마가 숨진 채 발견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모녀의 시신이 숨진 지 두 달이 넘어서야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이들의 죽음을 아는 이는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도 없었다.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빚과 가난에 시달리다 마침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어린 영혼이 몸서리치도록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하면 애달프기 그지없다.
 시신과 함께 집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남편이 숨진 뒤로 너무 힘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모녀는 주소득자인 남편이 지난해 자살을 한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몇 달치 관리비가 밀리고 우편물이 쌓여갔지만’ 그동안 이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구원의 손길을 내민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사회 복지 시스템의 현주소다.
 정부는 이번 모녀 사망사건을 계기로 위기가구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즉 저소득층이 아니더라도 가구주 사망과 소득 상실로 생활여건이 급격히 악화된 가구까지 위기가구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건강보험료 5만원을 내는 지역가입자가 건보료를 6개월 연체했을 때 위기가구로 분류하지만 앞으로는 10만원을 납부하는 가입자가 3개월만 연체해도 정부가 관리에 나선다. 또 임대료 체납정보 제공기관을 확대하고 아파트 관리비 체납신고 정보 연계도 추진하기로 했다.
 발굴된 위기가구 지원을 위해서는 올해 말까지 전국 읍면동에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체계를 완성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사회복지, 간호직 공무원을 대폭 확충한다. 또한 경찰청, 지자체 등과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자살 유가족에 대해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대처가 실효성을 거둘 지는 의문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후속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사고는 되풀이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번 증평 모녀 비극도 4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의 판박이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로 고생하다 방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했다.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어떠한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 그리고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르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과 법안 개정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아졌으며 결국 같은 해 12월 ‘송파 세 모녀법’으로 불리는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이듬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허술한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으며 ‘세 모녀’의 비극은 아직도 되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촘촘히 엮고 복지공무원을 늘리는데도 왜 모녀의 비극을 막을 수 없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진정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하는 걸까?
 참으로 놀라운 것은 절해고도(絶海孤島)면 몰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주택에서 수 개월째 관리비가 밀리고 체납 고지서 등 우편물이 쌓이는데도 누구 하나 모녀의 집 현관문을 열어볼 생각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웃 주민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더라도 그들이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자화상이다.
 국가가 아무리 돈을 들여 복지시스템을 구축해놓는다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공무원의 의지와 주민들의 관심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이번 증평 모녀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다.
 가난 구제는 나라는 못해도 사람은 할 수 있다. 비록 우리 스스로 가난을 해결할 수는 없을지라도 위기에 처한 이웃을 발견해 국가 복지체계 내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구제를 받게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서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또 다른 ‘모녀’는 없는지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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