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 인사’의 정치학
  • 모용복기자
‘폴더 인사’의 정치학
  • 모용복기자
  • 승인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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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십여 년간 스마트폰을 사용해온 친구가 말했다. “내겐 폴더폰이 맞아. 말이 스마트폰이지 실제 사용하는 건 전화통화와 인터넷뱅킹이 고작이지. 그거야 컴퓨터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니야? 몸체가 커서 들고 다니기 여간 불편하지 않고 혹시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개인정보가 유출될까 걱정되기도 하고…”
비싼 가격, 탑재된 수많은 기능에 비해 실제 쓰임이 그리 많지 않은 스마트폰에 대한 푸념이다. 젊은 친구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에게도 스마트폰이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승강장이나 식당에서, 심지어 모임 중에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SNS를 한다. 익명의 수많은 사람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스마트폰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가까운 사람과는 오히려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인간관계 단절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지 근래 들어 폴더폰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한 때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폴더폰이 우리 생활 속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피쳐폰을 경험해보지 못한 스마트폰 세대들에겐 새로움과 개성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또 중·고등학교 수험생들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부모의 강압에 의해 울며 겨자먹기로 폴더폰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 단어 fold(접다)의 파생어 folder는 서류철, (컴퓨터 시스템)폴더 등 외에도 ‘접는 것’이란 의미를 가진다. 접는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종이 따위를 겹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심리적으로는 상대보다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렇듯 폴더란 단어 속에는 유·무형적 의미가 함께 내포돼 있다.
우리는 흔히 폴더폰처럼 90도로 접히는 깍듯한 인사를 ‘폴더인사’라 부른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 최대한 예를 갖춰 하는 인사로서 통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잘 하지 않는다. 부득이 어려운 청탁을 해야 할 경우나 존경해 마지않는 어른 또는 윗사람을 대할 때 이런 인사법이 종종 사용되기는 하지만.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대한민국 국가수반인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을 향해 폴더인사를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평양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환영하는 시민들을 향해 폴더인사를 한 이후로 수시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1인 독재체제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 대통령의 인사는 무척이나 생소하고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90도 인사가 오직 수령에게만 하는 것인데 남한의 최고 지도자가 적국(敵國)의 주민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으니 그들에게 미친 충격파가 결코 적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대통령이라고 하면 주민들이 신(神)처럼 모셔야 하는 대상이며, 악수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배려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니 문 대통령의 폴더인사가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접해보지 못한 북한 주민들에게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며, 대통령은 선택을 받기 위해 기꺼이 유권자인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인다. 폴더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지금은 문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머잖아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폴더가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인민복 차림의 북한 최고위층들은 하나같이 배불뚝이다. 이는 그들이 평소 주민들에게 허리를 굽히는 일이 없어 운동량 부족에 걸려 생긴 현상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허리를 굽힐 줄 아는 사회, 바로 민주국가의 참모습이요 힘이다.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행한 폴더인사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북한 주민들의 가슴 속 깊이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어 놓은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기절초풍할 노릇일 테지만. 트럼프와 맞짱 뜨는 배짱과 전략을 지닌 김 위원장이 이번에 문 대통령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이 심은 민주주의의 씨앗은 북한 주민들에게 백 마디 천 마디 수사(修辭)보다 더한 울림으로 남아 자유에의 갈망과 통일의 외침으로 활짝 피어날 것이다.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산 한민족,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이 머잖아 우리 눈앞에 펼쳐질 날이 도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폴더폰이 폴더 스마트폰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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