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없는 뱀’과 `독 있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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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없는 뱀’과 `독 있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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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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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독 없는 뱀도 맹독을 가진 뱀과 아주 비슷한 무늬를 한 경우가 많다. 맹독성 뱀인 척 위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위조’는 늘 나오게 마련이다. 성공은 모방자들을 부른다. 그것은 성공할 확률이 높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학력 위조는 그래서 나온다.
 어느 사회에서나, 학력이 높을수록, 나은 대우를 받는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고, 보수도 많고, 사회적으로 나은 대접을 받는다. 원래 능력이 큰 사람들이 좋은 상급 학교에 갔을 터이니, 그런 대우가 능력을 반영하는 면도 있지만, 능력을 떠나 높은 학력과 좋은 학교가 대우에 영향을 미치는 면도 분명히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94년 대학 입학자의 경우, 상위 1~5위 대학 졸업자 월 평균 임금은 233만 원으로 6~10위 대학 졸업자 178만 원보다 크게 높았다. 학력 위조 혜택은 일단 크다 할 수 있다.
 학력 위장 풍조는 학력 중시 풍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지배 계급이 권력을 독점하고 신분제를 통해 그것을 유지했다. 그런 독점 체제는 교육과 지식 독점을 핵심적 요소로 삼았다. 과거(科擧)는 천년 동안 우리 사회의 궁극적 자격부여 과정이었다. 그것은 높은 신분을 보장했다. 과거 급제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그런 전통은 일제 `고등문관 시험’을 통해 유지되었고 해방 뒤 `고시 열풍’으로 생기를 이어왔다. 요즘엔 젊은이들이 국가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애쓰는 터다.
 가짜 박사 신정아 추문에서 눈에 뜨이는 패턴은 당사자들이 거의 다 예술이나 예술과 연관된 분야들에 종사한다는 사실이다. 또 추문의 뿌리가 대개 대학의 교수 임용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들이 가리키는 것은 대학에서, 그리고 특히 예술 분야에서, 학력 위조의 혜택이 유난히 크다는 점이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들은, 일반 기업들과는 달리, 극심한 경쟁에서 면제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교육 배급 체제 덕분에 대학들은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된다. 시장 경제 체제를 지닌 사회지만, 교육에 관한 한,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선택권이 거의 없다. 여유 있는 소비자들만이 외국 대학들을 고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명령 경제 체제에서처럼, 그들은 정부가 강요한 품질 낮은 교육만을 소비하게 된다.
 자연히, 대학들은 교수들을 뽑는 과정에 소홀하다. 기업들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좋은 직원을 뽑는 데 달렸음을 잘 안다. 많은 자원을 들여 좋은 사람들을 뽑아 열심히 훈련을 시켜서 생산성이 높은 종업원들로 만든다. 다국적 기업들이 임원을 뽑기 전에 몇 십 번 면담하고 여러 달 관찰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기업들이 직원들을 정실 인사로 뽑고, 그들 학력조차 제대로 조회하지 않고 학위 증명서 사본을 받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학은 본질적으로 교수라는 종업원들이 학생이라는 소비자들에게 지식이라는 제품을 파는 기업이다. 당연히, 교수들은 대학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들의 능력과 지식에 대학의 운명이 달렸다. 대학들이 그렇게 중요한 교수들의 자질에 대해 그리도 소홀하다는 사실은 그들 사이의 경쟁이 거의 없다는 사실로만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제품과 관련하여 소비자들의 항의를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들을 뽑는 데서도 가장 나은 사람들을 뽑는 대신 부패한 관행들을 따를 여유가 있다. 이런 행태가 교수들의 능력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객관적 평가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예술과 운동 분야에서 두드러지리라고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만일 대학들이 자신들의 경쟁력에 대해서 마음을 깊이 쓰게 된다면, 그들은 당연히 좋은 교수들을 뽑으려 애쓰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름난 브랜드의 평판을 지키려는 기업들처럼, 자신들의 평판을 지키려고 자신들의 졸업생이라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가려내는 데 힘을 쏟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력 위조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대학을 바꾸는 길은 교육 산업을 지금까지의 실질적인 명령 경제 체제에서 시장 경제 체제로 돌리는 길 뿐이다. 교육의 소비자들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대학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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