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철조망 선물’
  • 모용복기자
기해년 ‘철조망 선물’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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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우리 문예사(史)에서 ‘철조망(鐵條網)’이라는 제목의 두 작품이 있는데 하나는 소설이요 하나는 영화다. 그런데 두 작품은 장르는 다르면서도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탄생했으며 더군다나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적 배경을 함께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1960년 제1회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작인 강용준의 소설 ‘철조망’은 1953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좌우익 포로들의 충돌사건을 다룬 전쟁계열의 소설이다. 작가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과 인간의 강인한 생명의지를 잘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소설의 주인공 민수는 공산포로들의 무자비한 살상(殺傷)극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기도하다 실패해 포로수용소의 비밀 지하실에 감금되고 만다. 갖은 고문으로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손과 발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리는 가운데 본능처럼 철조망에 매달려 기어오르지만 끝내 철조망을 넘지는 못한다. 포로수용소 보초들의 총에 맞아 철조망 위에서 숨지면서 탈출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역시 1960년에 만들어진 조긍하의 전쟁영화 ‘철조망’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폭동사건이 배경이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낙동강 고지에서 북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간호장교 김혜련은 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갔다 자유를 찾아 괴뢰 진영을 빠져나온 이혁과 한 민가에서 조우한다. 혜련은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이혁을 국군에게 인도하고 이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된다. 그날 밤 포로수용소에서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반공포로와 공산포로들 간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수백 명의 반공포로들이 공산포로들에게 학살당한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이혁은 이승만정부의 전격적인 반공포로 석방으로 자유의 품에 안기고 연인인 혜련과도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작품은 서로 결말은 다르지만 한국전쟁의 참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남과 북, 좌·우익 포로들을 갈라놓고 피비린내 나는 죽음을 부른 철조망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되고 있다.
이렇듯 남북 분단의 비극적인 상징물인 철조망이 최근 들어 남북 화해무드에 힘입어 마침내 그 일부가 허물어졌다.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11개 초소(GP)에 대해 시범철수를 완료하고 상호검증까지 마친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 GP를 서로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그 역사적 의미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GP 시범철수는 70년 가까이 분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크나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이 남과 북의 군사들이 서로 적(敵)의 감시초소를 찾아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념과 분단의 철조망이 녹아내리는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 모두의 선물인 철조망을 육군이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육군 제7보병사단이 GP 철수 때 뜯어낸 철조망을 잘라 액자에 담아 ‘청책(聽策)투어’ 차 접경지역을 찾은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연말을 맞아 부대를 위문한 군인공제회 간부, 대형은행 간부에게까지 선물했다고 하니 군(軍)의 마음 씀씀이가 보통은 아닌 듯하다.
논란이 일자 육군은 “잔해를 보존하라는 국방부 지침을 담당자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급거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지침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베를린 장벽’과도 같은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역사적 교훈으로 영구보존해야 함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인데 군이 몰랐다고 하니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육군이 선물한 철조망 선물을 받아든 의원들 중 누구 하나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접경지역 주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민원을 듣겠다며 달려간 이름도 낯선 ‘청책(聽策)투어’도 진정성이 의심된다. 철조망이 지닌 민족적, 역사적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철조망을 가까이 끼고 살아온 주민들의 고통을 어떻게 헤아린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의원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철조망을 담은 액자에 쓰인 문구)라는 육군이나 철조망 선물을 받아들고 희희낙락(喜喜樂樂)한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철조망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우리의 안보현실을 보는 듯하다. 또한 분단이 빚은 한민족의 아픈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추위 속에서 신새벽 여명을 헤치고 휴전선을 오르내리는 병사들이 있다. 수많은 그들이 있기에 이 산하(山河)에 변함없는 계절이 피었다 지고 어제가 가고 또 오늘이 온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쓴 철모(鐵帽) 위로 기해년(己亥年) 새 해가 힘차게 솟아올랐다.
60년 만에 도래한다는 황금돼지해가 우리 민족에게 상스러운 기운을 듬뿍 가져다주길 소망하며, 새해에는 60여 년 간 한반도 허리를 갈라놓은 철조망이 허물어져 새들처럼 우리도 자유로이 남과 북을 왕래할 수 있게 되길… 그리하여 정치인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가슴 속에 ‘철조망 액자’를 하나씩 매달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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