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시대를 살아가는 법
  • 경북도민일보
도시재생 시대를 살아가는 법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9.0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쇠퇴하는 도시 방치한다면
결국 사망선고 받게 될 것
확장·개발 재미는 없지만
개선·내실화라는 가치에서
새로운 기쁨 찾아가야 한다

[경북도민일보] 김주일의 도·시·공·감

바야흐로 도시재생의 시대이다. 재생이라는 키워드에 ‘뉴딜’이라는 표현까지를 더하면서 무언가 보다 적극적인 느낌의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그 속에 갖추어진 메뉴도 다양하다. 동네와 골목길을 살리기 위한 소소한 사업에서부터 활기가 사라진 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한 계획, 그리고 지역 경제를 주도할만한 대규모 지역개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사업이 구상되고 있다. ‘도시재생대학’에 대한 광고가 이곳저곳에서 주민들을 부르고 있고, 농촌의 작은 읍내에서도 사업에 대한 기대가 잔뜩 담긴 현수막이 날리는 것을 보곤 한다. 이 모두가 정부가 도시재생뉴딜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고 5년간 총 5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 장면들이다.
쇠퇴하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정책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별로 다른 뉘앙스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뿐이다. 고도성장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던 1990년대까지는 재개발(Redevelopment)이란 표현이 주로 쓰였다. 도시의 낡은 부분은 헐고 새로 지으면 그만이었다. 더 크고 높게 지으면 도시는 다시금 잘 돌아갔고, 아무 문제없었다. 하지만 IMF 사태 후 힘겹게 진입한 새천년 초에 도시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고도성장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개발한다고 해서 다 분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재개발이라는 표현은 희미해지고 대신 재활성화(Revitalization) 개념의 사업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마을 만들기’, ‘지역 만들기’로 불리던 정책들이 그것이었다. 재개발의 시대에 소외되었던 지역을 살리자는 취지였지만, 재개발이 어려워진 시대의 출구와 같은 정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성장이 멈추고 지역의 활기가 사라지는 것을 직접 체감하는 2010년대, 우리는 ‘재생(Regeneration)’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다. 재생은 사실 매우 절박한 의미를 담고 있다. 말 그대로 사라진 생기를 돌이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역의 소멸을 염려하는 시기가 열렸다는 신호인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좀 눈치를 채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한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도 끝은 아니다. 도시의 쇠퇴를 먼저 경험한 서구에서는 도시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일견 우아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부활, 즉 죽은 것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도시의 생기가 소멸하여 완전히 죽은 것을 인정하는, 가장 극단적인 단계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초 일본의 도시재생 현실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대상지는 큐슈 섬과 본토인 혼슈 사이에 끼어있는 중소규모 항구도시들이었다. 시모노세키, 우베와 같은 도시들은 한때 중공업, 조선, 철강으로 일본을 견인하던 도시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산업도 물류도 예전 같지 않아 쇠퇴 일로에 놓인 도시들이기도 하다. 우베 시의 재생본부를 방문하고 나는 자못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상을 넘은 심각한 쇠퇴양상이, 그리고 재생 정책에 담긴 극단적인 절박함이 나를 놀라게 한 것이다. 도시의 인구는 한창 때의 절반에 불과했고 전체 건물의 1/3은 완전히 빈 상태였다. 그야말로 물 빠진 스펀지와 같이 구멍이 숭숭 난 모습이었다.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입지적정화’ 계획은 더욱 충격이었다. 공동화된 중심시가지의 재생은 사실상 포기하고, 그 속에 경계를 정하여 새로운 작은 시가지를 조성하자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기존 도시는 더 이상 재생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개체에게 양분을 제공하고 떠나야 할 죽은 개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의미로 흔히 ‘바닥을 쳤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바닥 밑에 지하층도 있다’는 무서운 표현도 있다. 이 표현처럼, 도시의 침체에는 그 바닥이 없다. 쇠퇴하는 도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도시는 결국 사망선고를 받기까지 내려갈 것이다. 우리에게 절박함이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절박함만이 다는 아니다. 우리의 도시가 건강한 상태는 아닐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생기를 아주 잃지는 않았다. 아직은 ‘재생’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고, 그렇기에 우리에겐 희망도 필요하다. 재생의 시대에 ‘확장’이나 ‘개발’과 같은 예전의 재미는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젠 ‘개선’과 ‘내실화’라는 가치에서 새로 기쁨을 찾아야 한다. 절박함과 희망 가운데 균형을 잡고 도시를 바꾸어 나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재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겪어야 될 일상이고, 고통스러워도 피할 수 없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절박함을 도구삼아 노력할 때 비로소 희망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도시재생 시대의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