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없는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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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없는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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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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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경북도민일보]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들으며

-언니네 이발관
귓가를 스치는 순간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 어떤 날씨라도 어느 거리를 걷고 있다 해도 노래의 전주만 들으면 전율이 찾아온다. 밤이 깊어도 새벽이 와도 우울한 날에도 행복한 날에도. 보이는 모든 것은 기어코 생경해지고 만다. 길을 잃을 지도 모른다. 아니,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다. 내게는 언니네 이발관의 ‘아름다운 것’이 그렇다. 이석원의 불완전한 목소리가 그렇고, 이능룡의 중독적인 기타 리프가 그렇고, 전대정의 경쾌하면서도 여유로운 드럼이 그렇다. 그들이 가진 코드와 화음은 다소 식상할 정도로 뻔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음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언니네 이발관’이 추구한 음악은 사실 손가락 사이에, 눈동자에, 발뒤꿈치에, 정수리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을 우리를 대신해 굳이, 기어코, 발화한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소리 가운데 제 그릇에 옮겨와 담은 소리가 음악이라는 걸 이해하는 것에도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버렸는데 언니네 이발관은 몇 발 더 나아가서 말한다. 그 음악이라는 것에도 지지부진함이라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권태가 녹아 있다고. 그건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누구도 노래하지 않았다.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색함이라는 병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속에는 어색함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어색함 속에는 무언가, 이를테면 진실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그 무언가가 웅둥그린 채 들어있는 것만 같다. 언니네 이발관은 완성되지 않은, 완성되지 않을, 그럼으로 영원히 완성이라는 중심에 닿지 않길 선언한다. 그들의 음악적 비밀은 비단 완성된 작품을 듣는 행위가 아닌 그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 즉 어떤 고통과 어떤 슬픔과 어떤 비탄을 견인한 채 음표 속에 혹은 가사 속에 어떤 과정으로 꾹꾹 눌러 담은 어떤 마음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는데 있다. ‘어떤’이라는 추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모호함 속에 어쩌면 우리의 삶이 있는 건 아닐까. ‘어떤’을 ‘어떤’ 아닌 것으로 만드는 데에 우리는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같은 불완전함이 녹아 있는 공간은 바로 일상이다. 수줍게 건네는 고백이나 서투른 이별, 밤을 서성이는 비루한 발걸음이나 이제 잠에서 깬 아이의 허망한 눈동자 속. 너무나도 인간다워서 대단할리 없는 그런 모습이라 우리는 그 세계를 ‘어설픈’이라는 형용사로 치부해온 건 아닐까. 세상은 점점 완성된 포즈를 취한 채로 살아가길 강요한다. 우리네 삶은 점차 멋지고 찬란한 포즈를 취해야만 하는 완성품의 진열 속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완성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SNS라는 전시 체계를 통해 완성품을 대수롭지 않은 풍경으로 끌어내린다. 좋아요 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언니네 이발관이 그려내는 불완전함은 외롭기 그지없다.
-언니 없는 언니네 이발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이발관은 어찌 된 일인지 문을 드문드문 열 뿐더러 연다 한들 장사를 잘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자격증도 없는 것 같고, 사실 사업 허가를 낸 것 같지도 않은데, 게다가 해체 선언까지 했는데도, 나는 왜 자꾸만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와 “다음 앨범이요.” 라고 말하길 기다리며 텅 빈 가게 앞을 서성이는가. 이상하게도 이발사를 사칭한 이 서툴고 어설프고 어색한 몸짓들에 내 몸이 자꾸만 기우는 건 무엇 때문인가.
그들을 벗어날 방법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위풍당당한 걸음이 아닌, 흐느적흐느적 삐걱삐걱 대는 우중충한 날에는 더욱 이 이발관이 생각나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발관의 하나밖에 없는 의자에 앉아 이발보를 턱밑에 두르고 꾸벅꾸벅 졸며 세 남자가 나누는 나른한 대화를 듣고 싶을 뿐이다.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이발해준 적이 없는 이 무책임한 이발관을 또다시 찾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언니가 없는 언니네 이발관에는 가위도 빗도 심지어 헤어 드라이기도 없지만 거울이 없다는 데에는 도무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뿐이고, 그래도 괜찮다며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슬쩍 머리를 맡긴 채 화답할 뿐이고.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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