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 이사회 파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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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팩커드 이사회 파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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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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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팩커드(Hewlett-Packard: HP) 이사회는 2002년 242억 달러에 컴팩(Compaq)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파란을 겪었다. CEO 칼리 피오리나와 창업자의 2세 사외이사 월터 휴렛이 컴팩 인수를 두고 의견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사회는 양분되었고 가까스로 의안을 주주총회에 올려 합병이 승인되었다.
2005년에는 이사회가 실적 부진을 이유로 피오리나를 축출했는데 주가가 하루 만에 7% 올랐다. 피오리나의 후임자 허드(Mark Hurd)는 HP의 실적을 개선시켜 실리콘 밸리의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받았으나 2010년에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물러나게 되었다. 오라클의 엘리슨 회장은 허드를 내보내기로 한 HP 이사회의 결정이 스티브 잡스를 축출했던 애플 이사회의 결정에 버금간다고 비판하면서 며칠 후에 재빨리 허드를 영입했다. 허드는 지금 오라클의 CEO다.
허드의 후임자 아포테커는 1년을 못 버텼고 그 사이에 HP 시가총액은 300억 달러 증발했다. 특히 2011년 8월 19일이 중요한 날이다. 이날 HP는 PC사업을 유럽의 2대 소프트웨어회사인 영국의 오토노미(Autonomy)에 110억 달러에 매각한다고 발표해 주가가 25% 하락했다.
여기서 행동주의 펀드 릴레이셔널(Relational Investors)이 등장했다. 릴레이셔널은 폭락한 HP 주식을 매집해 1.5% 지분을 확보했다. 릴레이셔널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면서 마찬가지로 HP에 투자하고 있던 거대 연기금 캘퍼스(CalPERS)가 릴레에셔널의 휘트워스 회장에게 HP 이사회를 개편해달라고 주문했다. 아포테커는 이사회 결의로 해임되었고 이베이 CEO였던 맥 휘트먼이 취임했다. 휘트먼은 이베이가 직원 30명일 때 합류해서 1만5천 명 회사로 키운 경영자다.
휘트먼은 PC사업 매각을 철회하기로 했으나 휘트워스는 이사회가 좀 더 기능을 제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외이사 자리를 요구했다. 휘트워스는 자사주 매입, 배당 증액, R&D 투자 확대 등도 함께 주문했다. HP의 M&A 전략도 좀 더 신중해져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릴레이셔널은 다른 펀드들에 비해 다소 소프트한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그 몇 년 전에 홈디포의 지분 1.3%로 CEO와 4인의 이사를 축출한 전력이 있어 HP 이사회는 휘트워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다. 2년 임기, 그 기간 동안 릴레이셔널이 HP 인수를 시도하지 않으며 지분은 10% 아래로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오웬 워커가 쓴 책(Barbarians in the Boardroom)에 따르면 처음에 이사들은 행동주의 펀드 회장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데 대해 우려했으나 휘트워스는 곧 존경받고 인기 있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고 회사 밖의 반응도 매우 좋아졌다. 주주들도 휘트워스를 좋아했다. 휘트먼과 휘트워스는 가까운 동맹관계를 발전시켰다.
HP는 2011년에 오토노미를 117억 달러에 인수한다. 시가에 79%의 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이어서 시장에서 조롱을 받을 정도였다. 이 조급한 M&A는 곧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구성원들간 문화충돌과 회계부정 문제가 불거졌다. HP는 2012년 말에 그 후유증으로 88억 달러를 손실처리한다고 발표했고 HP 주가는 12% 내려앉았다.
일부 주주들은 오토노미 인수 실책을 이유로 회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주주총회에 즈음해서는 주주그룹과 의결권자문사들이 일부 사외이사의 재선임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서는 이사회 의장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이사들은 가까스로 자리를 지켰으나 주총 직후 일부 이사들은 결국 사임했고 이사회 의장도 교체되었다. 휘트워스가 새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이사회 의장이 된 휘트워스는 휘트먼과 함께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약 32만의 종업원들 중 3만4천 명을 감원하고 고위 임원 다수를 내보냈다. R&D 투자도 늘렸다. HP 주가는 25% 회복되었다. 그러나 2014년에 휘트워스가 암 진단을 받아 사임한 후 휘트먼이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겸하게 되었다(휘트워스는 2016년에 6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릴레이셔널의 다수 투자자들은 휘트워스가 펀드에서의 역할을 줄이게 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약정을 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릴레이셔널은 신규투자를 중단했다.
휘트워스 사퇴 후에 HP는 PC와 프린터, 그리고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로 회사를 양분하기로 했다. 릴레이셔널도 이 계획에 찬성했다. 2015년 11월 1일 자로 HP는 HP와 HP엔터프라이즈(HPE)로 나누어졌다. 오토노미는 결국 2016년에 영국의 마이크로 포커스에 매각되었다. 휘트먼은 2017년에 HP 이사회 의장에서 내려와 HPE의 CEO가 되었는데 2018년에 드림웍스의 카첸버그가 구축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퀴비(Quibi)를 맡으면서 회사를 떠났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행동주의 펀드는 상당히 낮은 지분에 투자하면서도 대상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이유는 기관투자자들과 다른 주주들이 동조하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침묵하는 다수’의 대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배당 요구는 다른 주주들에게 일단 호감을 주는 전략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대주주 지분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주주들과의 소통 노력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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