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시도가 시대 앞선 세기적 명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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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시도가 시대 앞선 세기적 명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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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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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의 클래식 이야기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을 감동시키는 연주가들

우리나라에 4손가락만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명한 이희아씨가 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4손가락의 선천적인 기형을 갖고 태어나 지금까지 불굴의 의지로 자신만의 음악을 개척하며 장애를 이겨낸 우리나라 대표 예술가이다. 보통의 피아니스처럼 열손가락으로 연주해내는 것이 아니라 네 손 가락으로 피아노 음악을 소화 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녀를 위한 연습방법과 그녀만을 위한 작품들을 그녀 스스로 창작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남들보다 수십 배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야만 했을 것이다.

오늘은 장애우를 위해 작곡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하나를 소개해 보려한다. 프랑스의 명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이 1931년 작곡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제목만 보아도 당시 혁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연 때마다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작품은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느 일반 피아노작품과는 완전히 구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피아노 연주

이 곡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분석 철학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파울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원래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장애가 없는 부유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 집에서 자주 열었던 VIP사교계의 성대한 살롱음악회를 즐기며 자라났다. 이 살롱음악회는 종종 그의 집에서 개최되었는데,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말러’, 바이올린리스트 ‘요하임’ 같은 음악계 거물들이 연주자로 초청되기도 했다. 연주자들의 이름만 들어도 ‘비트겐슈타인’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부호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음악적 환경에서 어릴 적부터 성장해온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음악적 명사들로부터 재능을 인정을 받으며 음악성을 키워나갔다. 특히 피아노는 배우지 않아도 잘 쳤고 조금만 수업을 받는다면 기성연주자 못지않게 완벽한 음악을 연주해 낼 수 있을 만큼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연주를 본 사람들은 그를 “모차르트의 재림”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그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했고 조국 오스트리아 음악계의 미래였다.

그러나 전쟁은 그의 밝은 미래를 송두리째 사라지게 했고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조국을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도중 전장에서 피탄 되어 큰 부상을 입어 오른팔 전체를 절단해야만 했었다. 그는 전쟁포로가 되어도 한쪽 팔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연민으로 다가왔던 주변사람들의 동정과 도움은 매몰차게 거절했으며 늘 위풍당당했다. ‘파울’은 왼손으로 피아니스트의 삶을 계속 살겠다는 각오를 하고 수용소에서 그는 손가락이 닿는 곳이라면 땅바닥이라도 피아노연습을 했고 전쟁포로의 신분이라 오선지를 제공받을 수가 없어 양손으로 연주되는 곡들을 머릿속으로 왼손만 연주될 수 있도록 편곡했다. 그가 암기한 곡이 꽤 많았고 이렇게 기억으로 편곡된 그의 작품들은 전쟁이 끝난 후 사보되어 오늘날까지도 독주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음악사에 길이 빛날 도전, 왼손만을 위한 작곡

그의 인생은 장애를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쟁취해 나가는 것이다. ‘오른손이 없어도 아직 왼손은 나에게 있지 않는가? 만약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다시 연주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값진 연주가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그는 새로운 도전을 생각해낸다. 그것은 자신의 왼쪽 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장르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 해달라고 작곡자들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자신의 집에 와서 연주해주었던 유명 작곡자들을 찾아다니며 의뢰를 하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벤자민 브리튼’, ‘힌데미트’, ‘프로코피에프’ 등에게 찾아가 의뢰를 해보았지만 당시의 사회 인식으로 왼손만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기에 쉽게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다만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달랐다. 단 한번의 청으로 작곡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그의 마음에 흡족할 정도로 화려한 작품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 라벨은 여느 작곡자와는 달리 음악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내었는데 특히 관현악 악기에 대한 특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의 부족한 오른손 음악을 여러 가지 악기로 특색 있게 대체해주었다. 예를 들어 한손만의 약점을 보안해 주기위해 소리가 굴고 두터운 독특한 악기를 사용했는데 잉글리시 호른, 작은 클라리넷, 베이스클라리넷, 두 대의 바순, 콘트라바순, 트럼펫과 트럼본은 3대씩이나 사용하게 하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배려하였고 기본 타악기 외에도 소품인 탐탐, 우드블록, 트라이앵클 같은 작은 소품 타악기를 사용하여 연주에 더욱 섬세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31년 빈에서 이 피아노협주곡이 초연되고 대성공을 갖게 되었다. 2년 후에도 파리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공연이 되었는데 역시 대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로부터 그는 한손만 가진 장애음악가가 아닌 위대한 인간승리의 표상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은 왼손의 음악이 작품전반적으로 기교적이고 화려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모르고 듣는다면 한손이 아니라 양손으로 치는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착각되게 들릴 것이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재즈스타일의 ‘블루’이다. 전통적으로 협주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 작품은 전체가 하나로 역어지는 단악장의 협주곡이다. 형식은 느리고, 빠르고, 다시 느린 형태이다. 왼손만의 연주라 양손으로 연주되는 협주곡과 달리 기교면에서 화려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있겠지만 한번 들어보면 선입견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진다. 왼손의 테크닉은 양손 못지않은 현란함이 있기 때문이다. 빠른 Allegro분이 오면 재즈로 변한다. 재즈의 파격적인 리듬은 마치 춤을 추듯 노래한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는 듯 한 대화로 연주되며 느린 부분은 왼손만의 카덴차가, 마지막은 다시 재즈 풍으로 격렬히 음악은 마무리된다. 이작품은 전반적으로 재즈풍이라 전통적인 피아노 협주곡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라벨의 혁신적인 새로운 시도가 시대를 앞선 세기적 명작을 만들어내었다.



△편견과 차별 없는 음악의 세계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 유명해지고 지금까지 전 세계의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파울 비트겐슈타인’처럼 왼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손이 멀쩡히 있는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오른손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어 거추장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곡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곡 제목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듣는 것이 좋다. ‘왼손만 연주 한다’는 생각으로 들으면 곡이 끝날 때까지 무엇인가 부족한 점, 모자라는 점만 찾아내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은 아름다운 피아노곡이다. 부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듣기 좋은 곡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왼손을 위한’ 곡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 번 들어보거나, 정상과 비정상의 흑백논리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눈으로 이 곡을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라벨의 아름다운 피아노곡은 한 손만 있는 사람도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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