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향토사가 황용건(62)씨가 15일 공개한 이 자료는 1907년 7월부터 2년 간 한국에 주둔하며 일본에 항거하던 의병, 그중에서도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을 쫓는 기록이 생생한 ‘진중일지(陣中日誌)’다.
문경 진남관문은 그동안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소각설, 1896년 1월 15일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 퇴각 후 왜인 소각설 등으로 알려져 왔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소각설은 한글학회가 1978년 만든 ‘한국지명총람’ 5, 경북편Ⅱ에 “진남관문터는 돌고개 남쪽, 곧 할미성(군 산천)의 남문루이며, 동학란 때 불탐”이란 기사에 근거하고 있다.
1896년 소각설은 1992년 문경문화원 ‘문경지역의 산성’, 1998년 향토사료 제13집 ‘고모산성’에 “석현성은 1896년 1월 15일 운강 이강년이 이끄는 문경 의병이 퇴각한 뒤에 왜인들이 불을 놓아 태운 것”이라는 기사에 근거 한다.
이번에 황용건 씨가 발견한 ‘진중일기’에는 일본군 “국지 대좌가 9월 13일 오전 6시 30분에 제2대대장 불파 소좌에게 ‘전위’를 맡아 진남관을 거쳐 문경으로 향하도록 했다.(중략) 일본군은 오후 4시에 진남관을 지나 문경에 도착했다. 진남관에서 문경에 이르는 전선은 모두 잘려 있었고, 전주도 넘어져 있었다. 또한 일본인 집과 일본인과 관련 있는 한인의 가옥은 모두 파괴되고 소각되어 있었다”는 기록도 보여 진남문의 존재와 폭발이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황용건 향토사가는 “일본군이 한국에 와서 의병들을 토벌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된 이 자료는 특히 불멸의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며, “그 속에 진남문 폭발 기록, 문경의 당시 의병 상황과 김용사, 대승사의 일제 항쟁 등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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