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사(兩頭蛇)와 공명조(共命鳥)
  • 모용복기자
양두사(兩頭蛇)와 공명조(共命鳥)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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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남이 잘 되는 꼴을 두고 못 보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까? 수 천 년 전에도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경계하는 설화(說話)가 종교 경전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원시불교 경전인 ‘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양두사(兩頭蛇)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몸체에 머리가 둘 달린 뱀이 있었다. 두 머리는 먹이를 만났을 때 서로 먼저 먹으려고 경쟁했지만 번번이 오른쪽 머리가 선수를 쳐서 먹어버리는 바람에 왼쪽 머리는 항상 불만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오른쪽 머리가 먹이를 보고도 먹기를 주저하자 왼쪽 머리가 이때다 하고 얼른 집어 삼켰다. 오른쪽 머리는 그것이 독이 든 먹이인 줄 알고 먹지 않았지만 평소 불만이 가득했던 왼쪽 머리는 독이 든 먹이인 줄 알면서도 먹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두 머리의 양두사는 죽고 말았다. 시기심과 질투심이 돌이킬 수 없는 화(禍)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인간은 평소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지만 실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공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설화다. 부자(富者)는 자기가 잘 나서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입고 먹고 의지해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가난한 이들의 땀과 고통으로 이루어지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반대로 빈자(貧者)들도 그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부자들의 호주머니로부터 나오므로 상극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관계도 사실 알고 보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라 할 수 있다. 특히 한 국가나 사회,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상대를 미워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다간 결국 양두사의 꼴이 되고 만다. 즉 한 쪽이 죽으면 다른 한 쪽도 살 수 없게 되는 이치인 것이다.

매년 12월이 되면 교수들이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그 해 가장 이슈가 된 사회현상을 사자성어로 그럴듯하게 표현하는데, 올해는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고 한다. 공명조는 아미타경 등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목숨을 함께 하는 새’라는 뜻인데, 앞의 양두사 이야기와 그 함의(含意)나 교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공동운명체인 이 새 역시 양두사처럼 한 머리가 시기와 질투로 독과를 먹고 끝내 공멸(共滅)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공명지조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면서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선정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 교수의 지적대로 올해 우리사회는 좌우 진영논리와 대립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정치는 정치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보수-진보로 갈라져 엄청난 갈등양상을 빚었으며, 올해가 다 끝나가는 시점까지도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쪽이 죽어 떨어져야 끝날 싸움처럼 끝장을 볼 기세다. 지도층·국민 가릴 것 없이 온갖 막말과 비방이 난무하고 전선마다 상대를 깨부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벼든다.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냉전시대에도 이처럼 갈등이 노골화 된 적은 없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발단은 2년 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때 광장을 불태운 촛불과 이에 맞선 태극기부대의 갈등이 첨예화 되면서 대한민국의 진보-보수진영은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탄핵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극렬 지지자들의 세(勢)를 등에 업고 새로 들어선 정권에 사사건건 태클을 일삼으며 충돌했다. 탄핵사태로 권력을 손아귀에 넣은 진보정권은 반대쪽을 적폐세력으로 몰아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검을 휘두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쪽도 상대의 입장이나 자신의 처신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두 세력은 올해 가을 ‘조국대전’에서 건곤일척으로 맞부딪치기에 이르렀다.

비록 당사자인 조국은 법무부 수장 직에서 낙마했지만 수 개월간 이어진 싸움에서 선만 긋지 않았다 뿐이지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나고 말았다.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상대를 패퇴시켜 정권을 탈환하거나 수성하려는 정치배(輩)들이 판치는 곳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현주소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운명체를 공유하는 구성원으로서, 또 정치 지도자로서 공생공영의 사명감을 기대할 수 있을지 강한 회의가 든다. 같은 조국,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마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이들에게서 양두사와 공명조의 그림자가 어른 거른다면 지나친 말일까?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정치배들은 어쩌면 독이 든 먹잇감을 집어삼키고도 남을지 모른다. 공멸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총선을 넉 달 앞두고 최근 뉴스통신사인 뉴스1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에서 국민 7명 중 1명이 0점을 줬다고 한다. 전체 평균점수도 100점 만점에 37점에 그쳤다. 우리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지표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잘 보여준다. 정치 불신은 곧바로 선수교체론으로 이어져 유권자의 85%가 현역의원 물갈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총선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기와 질투, 복수심에 불타는 정치배들이 공멸의 길로 치닫는 행보를 계속하다간 자신이 먼저 자멸(自滅)의 길에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심판의 날은 머지않았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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