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요람에서 무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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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요람에서 무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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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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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 기술은 무엇일까? 건설이나 교통보다도 더 근본적인 요소는 의외로 위생기술이다. 위생기술 중에서도 폐기물 처리 시스템은 도시의 근간과도 같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배출되는 쓰레기가 단 며칠 동안이라도 거리에 쌓이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도시는 당장 마비될 것이고, 오래지 않아 도시는 각종 질병의 진원지가 될 것이다. 쓰레기가 순간순간 사라져 주기 때문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몰려 살면서 도시 문명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만약 쓰레기가 도시에 쌓여가고 있다면 그건 이미 도시 문명이 종말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공산당 선언을 집필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 도시를 조만간 멸망할 것으로 본 이유 중의 하나도 당시 런던의 쓰레기 문제였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쓰레기 처리를 그동안 우리는 너무 모호한 태도로 다뤄 왔다는 점이다. 쓰레기는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은 태워지거나 묻혀야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쓰레기가 마치 공중에서 분해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지금 포항은 쓰레기 처리시설 관련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나라 전역이 쓰레기 처리와 관련해서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미국 CNN 방송에서 한국의 쓰레기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보도 화면에 등장한 경북 의성, 수만 톤에 이르는 쓰레기 산의 모습은 거의 충격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국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쓰레기 산에서 새어 나오는 오염물질 때문에 고통받는 주민들의 한국말 인터뷰를 보면서 비로소 그게 우리나라, 그것도 경북 지역의 문제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쓰레기 문제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국의 쓰레기 발생량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히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미국, 유럽을 넘어 전 세계 1위 수준이다. 게다가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는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쓰레기 문제가 가시화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떠넘기기’식 처리 방식이다. 재활용 자원이라는 명목으로 쓰레기의 상당량을 중국, 필리핀 등으로 수출(?)해온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전면 중지한 데 이어, 올해는 필리핀이 쓰레기 수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필리핀은 한국의 쓰레기가 재활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비난하며 고스란히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러디 보니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쓰레기 문제가 갑자기 문 앞까지 다가와 거칠게 노크하고 있는 양상이 된 것이다.

이처럼 발등의 불이 되다 보니, 쓰레기를 고형화해서 태우는 발전시설, 이른바 SRF가 우리나라에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항 또한 일찌감치 그와 관련한 문제들이 불거지는 양상이다. 당장 피해를 보는 주민들은 이런저런 행동을 취해 보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벗어날 방안도, 구제받을 방법도 없어 애태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쓰레기 처리의 원칙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세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을 사회복지가 아닌 쓰레기 처리 문제를 다루는 원칙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잉태한 사람이 그 뒤처리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얼마의 돈을 받고 쓰레기를 받아줄 나라들도 사라지는 이 시점, 과연 우리는 쓰레기를 스스로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지역 정치인, 정책가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쓰레기 처리시설과 같은 님비(NIMBY) 형 시설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분명한 정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선거 때가 되면 나도는 공약은 대부분 공항, 병원과 같은 핌피(PIMBY) 형 시설들에 대한 것뿐이다. 쓰레기 처리시설에 대한 분명한 정책 제시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결과는 어떤가? 실제로 꼬박꼬박 들어서는 것은 공항이나 병원이 아니라 쓰레기 처리시설이다. 관련 정보나 정책 비전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은근슬쩍 처리되어 버린다. 이래선 안 된다. 표가 덜 되는 지저분한 문제라 해도 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리더는 없는가.

둘째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원칙의 정착이다. 쓰레기 처리의 1차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쓰레기를 만든 사람들에게 있도록 해야 한다. 숫자도, 목소리도 작은 지역 주민들이 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결말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쓰레기 처리에 대한 부담을 지역민 전체가 공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발생하는 피해와 그에 대한 보상대책 또한 이 원칙에 따라 사전에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시민들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장밋빛 공약에만 휘둘리지 말고, 도시의 ‘어둡고 지저분한 문제’를 직면하여 다루려는 리더들을 평가해주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바로 내년부터 말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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