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고 말해도 괜찮은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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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고 말해도 괜찮은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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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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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의 In Square Circle
-어쩌다 로커

로큰롤에 모든 걸 바치겠다, 고백하던 날들이 있었다. 치기 어린 소년은 하루가 다르게 로커의 기질을 습득해 나갔다. 라디오 노래를 공 테이프에 녹음하던 시절을 지나선 용돈을 모아 CD 플레이어를 사고, 문제집 대신 메탈리카 앨범을 사기도 했다. 짜릿한 기타 리프와 터질 듯한 드럼 소리를 만끽하려 세상을 향한 귀는 닫고 오직 음악에만 몰두했던 날들. 엑스 재팬과 드림 씨어터, 건즈 앤 로지즈와 미스터 빅, 시나위와 넥스트, 그대들의 사운드만 있다면 등굣길의 책가방이 무겁지 않았다. <수학의 정석>이나 <사회과 부도> 같은 책들이 어깨를 짓눌러도 오직 귓가의 짜릿한 밴드사운드만 있다면 문제없었다. 밀리오레에서 비프 광장으로, 야구장과 컨테이너 연습실을 순회하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나는야 악동 로커. 세상은 이제 내 것이 되리라.

허나 소년은 대학이라는 거대한 상징 앞에서 차차 쪼그라들고야 만다. 그 당시 나는 이유도 없이 어른이라는 존재를 싫어했으며, 실제로 몇몇은 저주를 하기도 했다. 기성문화에 대한 반감이 컸던 터, 급기야 부모님과의 불화를 겪은 것도 스물을 넘겨서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부모님은 로커의 길을, 음악 여행자의 길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반대한 분들이었고, 그때의 나는 오직 내 감정만 중요하게 주장하던 철부지였다. 나는 맛도 잘 모르는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고,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기타를 치고 헤드뱅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 무뚝뚝하면서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불만투성이 스무 살 청년은 이제 록 따위는 그만두겠다며 울기도 한다.



-질문하던 나날

하지만 록은 또 다른 문화를 견인한다. 대학가 앞에서 앞치마를 입고 떡볶이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순대떡볶이를 팔아서 역시나 술을 마시고, 가끔은 책을 사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던 나날이었고 하루하루가 눈앞으로 다가와 매직아이 보듯 현실은 흐릿하게만 보였다. 그러다 초점이 잡히던 순간이 있었으니. 아, 세상에는 록 말고도 나를 움직이는 음악이 또 있는 게 아닌가. 스티비 원더. 당신은 내게 록만큼이나 거대한 세계, 아니 우주였다.

그중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단 하나의 곡을 고르자면 단연 ‘Overjoyed’다. 우주를 유영하듯 신비로운 악기들의 향연과 확신으로 가득 찬 가사와 스티비 원더의 목소리는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나는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가사들을 아무렇게나 읊으며 그의 감성에 닿으려 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티비 원더와 함께 고추장을 풀고 어묵 육수를 우렸다. ‘Part time lover’를 들으며 메추리알을 깠고, ‘Whereabouts’를 부르는 그를 흉내 내며 순대를 썰었다. 음악은 무엇이며, 떡볶이는 또 뭐란 말인가. 질문하던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의 노래를 어설프게 따라하며 사람을 모으기도 했고, 작은 동아리를 만들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음악에 투신할 용기를 차마 하지는 못했기에 마음속으로 불러들인 멜로디를 나름으로 소화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말하자면 매직아이의 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터.



-너는 지금 어디쯤이야?

그의 음악을 한동안 즐겨듣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인터넷 문화에 힘입어 라이브 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검은 안경을 벗은 적이 없었고, 늘 신시사이저 앞에 앉아 온몸으로 노래했다. 그의 목젖은 순간순간 튀어 올랐고, 그건 물속의 작은 물고기처럼 정말로 살아 있었다. 그의 삶이 어떠했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단지 그가 음악으로 부리는 마술이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이들의 하루하루를 달리 만들어준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이제 소년도 청년도 로커도 아니다. 더 이상 어른을 미워하는 모순을 고집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고, 그렇다고 어른이라 뻐길 수도 없는 어중간한 시기를 헤매고 있다. 가냘픈 끈 하나를 쥔 채 음악을 한다고 말도 하지만 사실 음악은 하다라는 동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은 오직 느끼는 것만이 전부다. 자신이 곧 마약이라 말하는 살바도르 달리와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결코 음악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음악이거든요.

그런데 그 음악, Whereabouts?

좌표는 음 이탈, 지표는 ‘Overjoyed’, 배포는 두둑하게. 내 뒤는 견실한 로커들과 소울이 넘치는 스티비 원더가 있다. 그립다고 말해도 괜찮은 날에는 그래, 그의 노래가 그립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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