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던 인생, 죽을 고비 여러번 넘기니 봄 옵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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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던 인생, 죽을 고비 여러번 넘기니 봄 옵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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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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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첫발은 ‘야반도주’
토목현장서 잡일 도맡아 애
제대 후 직장 철공소 맞은편
가게 국수말던 아내와 결혼
건설현장 경험살려 여러 도전
5년전 내 손으로 한옥집 건설
여기가 내가 사는 ‘멋진 대궐’
차수특 씨 부부 현재 모습.
차수특 씨 부부 과거 모습.
차수특 씨 부부 결혼식 모습.
차수특 씨 군 시절.

 


차수특의 포항이야기<18>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도전하면 반드시 그 결과와 경험의 보상은 가치가 있어요.” “17살 때 중학교 졸업하고 마을친구들이랑 서울로 달라갔지요~ 그 때부터 제 이름처럼 특별난 인생이 시작됐죠.”

신광면 죽성1리는 왜가리 등이 철철이 날아온다고해서 학마을이라 불리는 장수촌이다.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누나를 제외하고는 아들로는 맏이였다. 그래서 가족생계를 걱정 안할 수 없는 처지였다. 신광중학교까지 졸업하고 1년쯤 집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도저히 이래 지내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부모님 몰래 동네 친구들과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세상을 향한 첫 도전이었다. 당시에는 우리 또래들의 무작정 상경도 자주 있었지만 부모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시도한 ‘떼 탈출’은 그리 큰 걱정은 안했다.

막상 서울로 올라가니 고생길이 훤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이 노가다였다. 토목현장에서 잡일로 전전했다. 그때 건설 붐을 타고 국회의사당 터파기부터 시작해 한강다리 공사, 말죽거리에서 동아건설과 큰 토목공사를 했고 이어 대림산업소속으로 석산폭파 등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다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 영천구간 아화터널 건설인부로 내려와 석산을 깨고 있을 때 처음으로 아버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징집영장을 들고 현장으로 찾아왔다. 아버지에게 끌려 내려와 군에 입대를 했다.

군 생활은 동네친구의 친척이 높은 계급으로 있어 일단 후방아 울산에서 좀 편하게 출발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할 일이 터졌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1968년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침투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갑자기 군 복무기간이 24개월에서 36개월로 무려 1년이나 늘어났다. 그렇게 ‘긴’ 군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몇 개월 짓는 중에 매형이 하던 철공소를 덜컥 맡게 됐다. 신광장터에서 자전거, 경운기 수리도 하고 농촌 대문용접 등 닥치는대로 하면 농사일보다 수입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에 간판도 거창하게 ‘만대공업사’라고 지어 내걸었다.

그 시절 혼담이 오가다가 연일 택전에 사는 고모의 중신으로 그 마을의 문학처녀 아내 이상선(68)과 1974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초에 장터에서 제가 철공일 을 하고 그 옆에서는 아내가 국수를 말아 팔고 그 때는 돈이 술술 모이고 참 재미었다. 그러다 참 잊지 못할 큰 사고가 터졌다. 결혼 후 5년쯤 뒤 1979년에 철공소에서 용접일을 하다가 카바이드가 폭발하는 바람에 얼굴 전면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는 얼굴 뼈가 부서져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위급상황이라 포항선린병원을 거쳐 대구 경북대병원으로 가서 여러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몇 달을 병원신세 지고 화이바를 얼굴에 덮어쓰고 버스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효자검문소쯤 오니 헌병이 검문하러 차안에 들어왔다가 공군조종사인줄 알고 경례까지 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은 웃지만 죽을 뻔 한 사건은 그 뒤에도 한 번 더 있었다. 흥해에서 볼일 보고 동네 친구 경운기 뒤에 타고 신광으로 들어오다가 호리못에 경운기가 추락해 또 한 번 저승 문 턱까지 다녀왔다.

그렇게 크게 다치고 나서는 철공소 일이 겁이 났다. 그래서 건설현장 경험을 살려 현장인부들에게 필요한 1회용 작업복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잘 됐다. 직원도 12명이나 고용할 정도로 순풍에 돛달고 번창했는데 또 고비가 닥쳤다. IMF의 충격으로 사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중국산 저가 작업복이 무차별로 들어오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두 아들 중 둘째와 ‘노가다 50년’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토목건설사업을 시작했다. 건설현장의 경험이 큰 밑천이 돼 5년 전에는 한옥집도 지었다. 직접 좋은 나무를 구입해 대들보를 올리고 젊은 시절 영천공사현장에서 봐 두었던 돌로 정원을 꾸며 부러울 것 없는 ‘멋진 대궐’로 만들었다.

이제 이 집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일만 남았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간호하며 5년 이상 대소변 받아내며 고생해준 마누라가 더 없이 고맙다. 얼마전부터 작은 도전에 나섰다. 건설현장에서 자격증을 따려니 공부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늦깎이로 방송통신고를 졸업했는데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70년 살아보니 두 아들이나 젊은이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젊음이 있을 때 도전하라. 도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차이는 끝에 가면 엄청나다. 젊을 때 실패는 용서받을 수 있고 또 만회의 기회가 많다, 한번 해보라.”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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