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맥주와 브루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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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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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마스의 ‘Doo-Wops & Hooligans’ 를 들으며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찬란한 한낮의 마술

일상의 공허함이 온몸으로 스며들기 전, 서둘러 브루노 마스를 찾아 볼륨을 높인다. 여린 피아노 아르페지오 사이로 솟구쳐 오르는 ‘Grenade’의 멜로디에 정신이 번뜩 들면서 기분이 쾌활해진다. 악기는 조화롭고, 비트는 당돌하며, 허스키한 음색은 매혹적이다. 브루노 마스가 와이키키에서 자란 성장 배경을 알고 있어서일까. 시원하게 터지는 고음에서는 여지없이 넓은 해변과 높은 하늘, 그리고 흐르는 파도가 떠오른다. 흐르는 모든 것은 어찌되었건 정체된 것보다는 낫다.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갈 시간이라 하더라도.

브루노 마스의 음악은 어디론가 (아마도 죽음으로) 흐르는 시간을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마술 같기도 하다. 그의 음악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모든 뮤지션이 바로 매지션이지 않을까.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 노래도, 이 글도, 어설픈 언변이나 멈칫하는 주저함도 모두 그 음악적 성질-시간에 순응하는 혹은 저항하는-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물음들이 춤추는 한낮의 음표는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다.



-화성 아닌 화성

마스(Mars)라는 별칭은 태양계의 화성(火星)에서 온 것이나 음계의 화성(和聲)이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서로에게 어울리며 노니는 화합의 공간이 그의 음악에는 분명히 있다. 나는 그에게 전염된 유쾌한 사람들을 여러 여행지에서 만났다. 필리핀 세부의 어느 바에서 만난 청춘들은 그의 노래가 나오자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즉석 무대를 만들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 모두가 브루노 마스였고, 현실에서 한 뼘 정도 허공에 뜬 음악이라는 존재였다. 태국 방콕의 카오산 거리에서는 ‘Nothin‘ on you’를 제창하는 각국의 이방인들이 화합을 이루고 있었다. 나 역시 브루노 마스가 부르는 후렴구를 놓치지 않고 따라했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라 로쉘의 술집에서는 ‘Uptown funk’가 반복해서 흘러나왔고, 멜번 트램 정류장 앞에서는 ‘Just the way you are’를 편곡해 연주하는 거리의 뮤지션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브루노 마스는 청중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목소리를 가졌다. 그것은 어떤 음악의 요건 중에서도 가장 앞선 것이지 않은가. 인색하게 그를 분석하며 정통 펑크나 정통 흑인 음악이 아닌 편협한 쇼맨으로 규정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지만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음악을 하고 있건 그 행로의 주인은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정통이 아니면 또 어떤가. 누구나 랩을 할 수 있고, 재즈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락에 몸을 내맡길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는 보다 중요한 지점이며, 브루노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명백한 아티스트다.



-브루노 타임

당신이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들으면 안 되는 노래 중 하나는 바로 브루노 마스의 1집 ‘Doo-Wops & Hooligans’이다. 브레이크 보다는 액셀러레이터에만 발을 올려두게 될 것이기에. 코너에서의 핸들링은 과감해지고, 룸미러로는 오직 자신의 얼굴만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감정을 호소하며 노래를 따라하고 있는 운전자를 말이다. 그러니 이 앨범은 집에서, 우아하게, 한낮에 들을 것을 권한다. 맥주 한잔 정도는 곁들여도 좋겠다.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진입로에서 거쳐야 하는 의식처럼 단번에 들이켜도 좋고, 향이 깊은 와인처럼 입술만 적셔도 좋다. 하지만 A면이 끝나고 톤암이 올라가면 당신은 B면으로 바이닐을 뒤집어야만 하는 그 시간을 감당해야만 한다. 음악은 모든 면에 존재하고, 우리는 아직 그를 쉬게 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LP의 B면을 뒤집는 시간, 지극히 현실로 복귀하는 그 시간을 블루스 타임이라 해도 좋겠다. 브루노 타임이라면 더 좋겠고. 음악은 다시 시작되고, 우리의 낮과 맥주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오성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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