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생태하천이 그 도시 미래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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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생태하천이 그 도시 미래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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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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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가 추진하는 학산천 생태하천복원사업 조감도. 사진=포항시 제공

도심하천의 복개과정과 생태하천 복원사업

인간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런 연유에서 인간은 하천이 흐르는 곳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삶의 터를 잡고 살았다. 물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의 생장을 관장하는 필수요소이다. 특히 도심의 하천은 삶터와 연결되어 있어 하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정서적 공간으로서도 톡톡히 그 가치를 발현하였다.

도심의 하천은 원래 자연적인 물 흐름과 지형적 차이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태가 갖춰졌지만, 현재의 하천 대부분은 홍수조절과 경작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직강공사를 벌려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경작이 중심이었던 시대에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공급이 하천의 주요역할이었다면, 근대기부터는 휴식, 관광, 여가 등을 겸하는 친수공간으로서 정서적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이후 산업화시기에 들어서면서 도시하천의 대부분은 산업폐수, 생활하수와 오수 등이 유입되어 급속히 오염되기 시작하였고, 악취가 심해 종래의 친수공간의 기능보다 하수기능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근대 산업국가 대부분이 해결책으로 선택한 방법은 아주 단순한 것에서 착안하였다. 바로 하천의 오염수를 걸러내는 정화시설을 갖춰 시커멓게 썩고 악취가 나는 도심의 하천을 시멘트로 복개하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악취를 해결하고 유휴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넓은 도로까지 만들어내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보였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30년도 되지 않아 복개를 다시 걷어내고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디자인하면서 도심하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햇볕이 들지 않은 복개된 하천은 당장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 안심하게 했지만, 오염은 계절과 관계없이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져 자연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도심하천이 변화하는 과정은 나라마다 시기와 형식에 차이는 있으나 최종단계에서는 복개를 걷어내고 자연 친화적 친수공간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산업도시의 성장과 도심하천의 시대적 변화

포항은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4대 하천인 학산천, 두호천, 칠성천, 양학천이이었다. 이들 하천은 포항의 도심을 가로지르며 흘렀음에도 오염되지 않아 다양한 어종이 서식했던 자연하천이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되었고 겨울이면 누구나 찾는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세탁기가 귀했던 시절 도심하천은 아낙들의 빨래터이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소통의 공간이었다.

1970년대 포스코의 본격적인 가동과 더불어 포항은 급속히 산업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인구는 주택수요를 급증시켰고 유휴지마다 건축물이 세워져 도심의 밀도는 점점 높아져 갔다. 어떠한 현상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빽빽이 들어찬 상가와 주택에서 매일같이 쏟아내는 생활폐수는 이미 도심하천이 자연적으로 정화하기에는 한계에 와있었다. 하천에 쓰레기와 찌꺼기가 쌓이면서 물은 시커멓게 썩어들기 시작했고 여름이면 악취와 모기떼가 기승을 부렸다. 일대는 불과 10여 년 만에 생활환경이 극도로 나빠지기에 이른다. 1990년대 급기야 하천의 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달하자 수질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방법은 하수종말처리시설을 갖추고 오·폐수를 정화하는 것이었다. 하수종말처리장과 정화시스템은 수십 년에 걸쳐 바닥부터 썩은 하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에도 당시로서는 마땅한 방안이 없어 결국 복개공사를 시작하였다.

포항의 도심하천 복개공사는 1980년대 중반 두호천 1.7㎞가 복개되면서 시작을 알렸다. 이후 오염이 가장 심각했던 남빈사거리에서 죽도시장으로 흐르던 칠성천 4.5㎞가 복개되었고, 롯데백화점 포항점 옆으로 흐르던 학산천 1.9㎞가 복개를 마쳤다. 2003년 양학동, 죽도파출소, 고속버스터미널, 동빈내항으로 이어진 양학천 3.5㎞가 복개되면서 포항 도심의 4대 하천이 땅속으로 감춰졌다.

오염된 하천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지고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곳은 음침해지고 더 빨리 상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시행된 미봉책은 비단 포항의 4대 하천만이 아니었다. 전국 대부분 도시가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선택한 방법이 도심하천 복개공사였기 때문이다. 복개된 도심하천에 대한 인식이 서울 청계천복원사업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심의 친수공간이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하천의 오염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연 친화적 친수 공간으로 돌아오는 학산천

포항도 산업도시로의 성장기에 복개했던 4대 하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사업대상구역으로 선정된 곳이 바로 대동우방아파트 앞 센트럴 그린웨이와 만나는 지점부터 포항여자고등학교, 포항중학교, 롯데백화점 포항점, 동빈내항까지 이어지는 “학산천”이다.

학산천은 일제강점기 비만 내리면 일대에 거주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포항의 모든 하천이 형산강 하류와 연결되어 있어 형산강의 범람은 도심하천의 홍수로 이어졌다. 당시 학산천에 대한 기록은 이러하다. “해마다 닥쳐오는 홍수 때에는 보기에도 무서운 급류가 주민들의 가옥을 위협하는 불안지대”라고 되어 있다.(조선일보 1927년 3월 15일) 학산천의 범람은 여름이면 몇 번씩 반복되어 주민들의 삶을 위협했다. 1926년 문제의 학산천을 메워 길을 넓히기로 한다. 그런데 1927년 일본인 부호 한두 사람에 의해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 원인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주택 뒤로 신작로가 나면 종전 길은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들기 때문에 매축(埋築)공사를 반대한 것이다.(조선일보 1927년 3월 15일) 학산천의 매립공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들의 사욕에 의해 공사가 중단되면서 포항의 4대 도심하천으로서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학산천복원사업은 국내와 해외 여러 사례를 거울삼아 단점을 보완하고 포항 정서에 부합하는 형태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친수공간의 장소적 특성에 걸맞은 조형미와 예술적 가치를 담아내는 것은 물론 디자인 방식에서도 자연 친화적인 생태계로 조성되어야 한다. 특히 도심을 가로지르는 친수공간임을 고려하여 누구나 접근이 쉬게 사용자 중심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 청계천복원사업에서 드러난 단점은 학산천복원사업의 장점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학산천, 청계천복원사업의 단점을 교훈 삼아야

청계천은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던 하천으로 1958년 복개를 하였고, 2003년 7월 고가도로와 복개 구조물을 걷어내고 5.8㎞에 이르는 복원사업을 시작해 2005년 10월 공사를 완료하였다. 대한민국이 떠들썩하게 개장행사를 펼치며 국민의 기대와 관심을 끌게 하였지만, 개장 초기의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으로 바뀌게 된다. 청계천복원사업은 과도하게 콘크리트와 대리석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엄격히 말해서 자연 친화적 친수공간이라 말할 수 없다. 당시 도심에서는 볼 수 없던 친수공간을 탄생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지만, 지나치게 인공성이 강조된 나머지 도심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성을 끌어들여 정서적 안정을 취하게 하는 공간으로서는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다. 수변공간의 보행로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양쪽 축대에 콘크리트 옹벽을 세웠고, 특정 지점에서만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있어 사용자의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물이 흐르는 하천 바닥은 관리 편의성에만 치우쳐 원래의 흙이 대신 콘크리트 바닥에 대리석을 깔아 오히려 복원이라기보다는 복개된 시멘트 뚜껑을 걷어낸 수준이라는 것이다. 당시로써는 국내 어느 지역에서도 사례가 없던 터라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기도 했지만, 청계천을 다녀온 대다수는 당시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자연미가 묻어나는 친수공간으로 디자인됐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청계천복원사업은 자연 친화적 친수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본받아서는 안 될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 도심하천 디자인의 표준이 된 시즈오카 미시마의‘겐베에 강’재생사업

6월이면 도심 한복판에서 반딧불이축제가 펼쳐지는 동화의 도시가 있다. 바로 시즈오카현 동부에 있는 친환경 도시 미시마(三島)이다. 겐베에 강은 이곳 미시마를 관통하며 흐르는 도심하천으로 후지 산의 눈 녹은 물과 복류가 사계절 이곳으로 흘러들어 물의 도시라 불리는 곳이다. 생태하천으로 잘 가꿔진 겐베에 강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건축물은 모두 하천을 바라보고 있어 하천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뜰이자 열린 생활공간이다. 주택과 공터는 꽃과 나무를 심어 경계로 삼았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폭이 좁은 편이지만, 이곳은 다양한 어종들이 수초에 기대어 헤엄치고 곳곳에 자라난 자생식물들이 마치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하다. 수변을 따라 정성스럽게 조성한 보행로는 나무와 돌을 번갈아 사용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징검다리처럼 디자인하였다. 연출한 형식과 재료의 물성을 고려해 최소한의 인공성만 드러나게 하여 자연물처럼 보이게 하였다.

겐베에 강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까지는 시련의 시기를 지혜롭게 대처한 특별한 주민기구가 있어 가능했다. 도심하천 대부분이 그러하듯 겐베에 강도 일본의 고도성장기 버려져 썩은 물이 흘렀던 강이었다. 도심의 오·폐수가 이곳으로 흘러들었고 온갖 생활 쓰레기가 쌓이면서 도심 하수구로 전락한 시기가 있었다. 1983년 학자, 시민, 행정,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미시마 모임’을 결성하기로 한다. 1994년에는 13개의 시민단체가‘그라운드워크 미시마 실행위원회’를 설립하게 되고, 1999년 국제 NPO 단체로 인정받으면서 ‘그라운드워크 미시마’로 이름을 바꾸고 겐베에 강 살리기 시민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된다. 미시마의 명성은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미시마는 죽은 하천을 다시 살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심하천을 디자인한 사례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천의 생태계를 복원하고 사람들의 접근성을 쉽게 하면서도 인공성을 최대한 배제했다는 점은 겐베에 강이 내세우는 최대의 장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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