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처리 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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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처리 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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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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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30대 남성이 귀가 중 골목에서 흉기에 찔린 채 사망한 일이 있다. 가해자는 곧바로 경찰에 자수했고 피해자와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사이로 당시 “소심한 성격을 문제삼아 ‘남자 맞는지 확인해 보자’며 모멸감을 줬다”는 것이 살해 동기다.

작금 학교는 감염증으로 대면 수업은 멈추었으나 학교폭력(이하 학폭)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간 우리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학폭발본책을 지시한 후 학폭근절종합대책을 만들고 학폭예방법을 제정하고 학교전담경찰관에다 교육지원청은 위센터를 설치하고 학교는 위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나아가 각종의 학폭대책위원회라는 기구도 설치했다. 묘책, 비법, 특효약을 동원하고 학폭제로시스템구축 방안을 찾아가며 발본색원에서 근절까지 노리고 있지만 단언컨대 학교를 없애기 전에는 발본색원도 근절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학폭예방법은 가해 학생에게는 서면사과, 접촉금지, 봉사활동, 특별교육,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이라는 조치와 생기부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치료, 보호조치 등으로 학폭에 대응해 왔고 학생, 학부모, 교사 대상의 학기당 1회 이상의 예방교육을 명하고 있다.

학폭처리 특징은 기본적으로 피해학생 보호, 가해학생 선도에 있다. 그 결과 징계보다 선도라는 교육 관점이나 온정주의가 지배한다. 또 경미 사안의 경우 학교가 자체 처리하고 중대 사안은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폭대책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한다.

실제적 특징은 학폭처리에서 은폐와 축소와 온정주의로 왜곡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인사상 불이익, 시끄러워지거나, 일거리 만들기 싫다거나, 학교 역홍보 등을 이유로 학교 당국은 학폭의 존재를 은폐하고 축소하려고 한다. 학교당국의 이런 행위는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고 더 이상 숨길 데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가해자의 부모는 학폭 원인을 자식이 아닌 밖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피해자 부모를 찾아 조용히 해결하고 온다. 이에 자식은 자기의 행위로 인한 상대의 고통의 크기를 알지 못한다. 자기의 행위가 잘못이라는 인식을 못하게 된다. 이러한 해결사적 부모의 모습은 되풀이 가해행위를 유인할 수 있다.

학교가 모르쇠로 외면하고 사회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동안 학폭은 더 독해지고 세상에 드러나도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선도가 먼저라는 구호로 물렁한 대응이 ‘되풀이 학폭’을 부르고 피해자인 학생은 구제도 안도감도 얻지 못한 채 학교 가는 길이 무서워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옮기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 친구끼리 장난이라는 둥 시대착오적 발상과 가해 학생을 앞에다 두고 “한 번이라도 이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 준 적이 있느냐”면서 감성에다 호소하고 그러면서 학폭의 원인을 그 아이가 아닌 사회로 돌려버리고 아이가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태도는 학폭을 왜곡한다.

학폭의 처리절차는 가해자에게는 행위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시간, 죄의식을 형성하는 시간, 반성의 시간, 사과의 시간, 되풀이 학폭 단념의 의지를 굳히는 과정이다. 피해자에게는 다시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구나의 안도감을 확인받는 과정이다. 제 3자에게는 학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배우는 과정이다.

다만 가해자의 일련의 과정은 실제 행위를 통해서 획득된다. 가해자의 부모는 행위의 내용,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 미안하다는 점, 향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을 피해자에 밝혀야 한다. 가해 자녀는 무릎 꿇고 머리 숙여 사과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서 행위의 잘못을 깨닫는 동기부여가 된다.

죄의식이든 반성이든 사과든 ‘되풀이 학폭’ 단념이든 그 출발점은 행위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수긍하지 못하는 이 입에서 나온 사과의 말은 피해자에게는 형태를 달리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해자 필벌이다. 벌을 피하게 한다면 정의 관념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탄원서 제출을 이유로 가볍게 벌 받아서는 안 된다, 잘못한 만큼 벌받아야 한다.”는 2011년 12월 20일 학폭 피해로 외동이를 잃은 어머니의 재판정 진술도 정의관념을 가리킨 말이다.

사과 후 처벌이 적정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가 안도감을 갖게 되는 거지 사과만으로는 안도감을 갖지 못한다. 얼마 전 학폭 피해자가 이미 사과를 받고서 용서를 했음에도 다시 가해 학생을 형사고소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잘못한 만큼 벌받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학폭처리시스템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외면한 학폭 처리는 백약이 무효이고 피해자에게는 야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온정도 관용도 안아주기도 반드시 필요하다. 처벌이 능사도 아니고 ‘벌했으니 끝’이라는 식의 처리 방식만으로는 학폭을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책임을 묻고 벌을 받고 난 뒤의 일이지 책임과 벌을 건너뛰고서 안아주기를 들고 올 것은 아니다. 벌받은 경험을 불이익의 근거로 삼아서도 낙인찍기를 해서도 안 되며 너를 벌한 게 아니고 너의 행위를 벌한 것이다,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라면서 과거를 극복하며 행위를 교정하고 새 출발을 자극하고 격려하는 단계가 안아주기다.

학교와 어른과 세상을 향해 죽음으로밖에 말할 수 없었던 아이들을 기억한다면 선도라는 미명 하에 온정 일변도의 물렁한 대응을 한 어른들은 이제 정의와 책임으로 돌아와야 한다. 알이 애벌레를 건너뛰고서도 성충이 될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벌 없고, 문책 없는 학폭처리는 결코 유용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적정한 상벌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상이나 칭찬을 통해서 성장하고 벌을 통해서 죄의식이 싹 트고 이 죄의식은 반성을 불러와 잘못을 줄이고 인간을 키우는 기제가 된다.

필자는 학교폭력 근절책, 특효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가 구축해 온 학교폭력 어젠다를 풀어가는 과정이 정의 관념에 맞느냐 책임 관념에 맞느냐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정의나 책임이라는 가치체계는 법의 등뼈임과 동시에 인간의 공존과 사회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고 학교폭력의 문제지도 답지도 이에 있기 때문이다. 전정주 경북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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