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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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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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점심으로 친구와 점심으로 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평소 가던 곳이라 별 다른 기대없이 늘 먹던 감자탕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우리 테이블에 음식이 도착했다. 허겁지겁 먹다보니 한가지가 빠진 것이 감자였다. 감자가 빠진 감자탕이라니 이름에 걸맞지 않았지만 수입산 커다란 등뼈에 붙은 살을 발라먹다 보니 큰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감자가 주었던 포만감이 사라진 감자탕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더위가 막 시작되기 전에 딸아이와 함께 갔던 테마파크에서도 햄버거 세트 외에는 프렌치프라이 단품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수입산 프렌치프라이 가격과 물류비 폭등으로 한동안 감자튀김은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리 먹음직스러운 버거를 먹더라고 감자튀김이 빠지니 매우 섭섭했다.

감자가격의 추이를 보면 감자가 식탁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올해 2월에 감자가격이 도매1㎏에 6만원이 넘었다. 평소 4만원 언저리였던 가격이었다. 그러다가 4월에 8만7000원으로 고점을 찍었다. 감자가격이 이렇게 올랐던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우리나라 감자 작황이 좋지 않았고, 둘째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세계 감자 가격이 뛰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감자시장에서 영토에 비해 생산량이 많은 나라이다. 감자 생산국 순위로 보면 증국, 인도,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 생산국이다. 보통 감자의 나라라고 떠올리는 미국보다 많은 감자를 생산한다. 우크라이나가 예전 소련연방에 속해있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두 나라의 감자 생산량을 더해 보니 세계 2위인 인도를 넘어선다.

감자 생산량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1인당 감자 소비량도 세계 순위권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1인당 년간 136㎏감자를 소비하여 세계 3위이다. 세계에서 가장 감자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벨라루스인데, 우크라이나 접경 북쪽에 위치한다. 이나라의 1인당 소비량은 181㎏에달한다. 전쟁과 관련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모두 감자는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 중 하나이다.

이 쯤해서 우리나라의 감자 소비량은 어떤지 잠시 비교해보겠다. 한국의 1인당 감자소비량은 년 12㎏ 밖에 안되었다. 전세계 평균이 70㎏ 정도이고 세계 1위 벨라우스 소비량의 6%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감자는 우리나라 7개 곡류에 포함된다. 한국의 7대 곡류는 쌀, 보리, 밀,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다. 감자는 우리가 소비하는 곡류 중 6번째로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그런데 이 7대 곡류의 소비량은 매해 감소하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생감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이 줄고 있고, 가공식품으로 감자를 접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

감자를 음식에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서양과 우리는 큰 차이를 보인다. 프렌치 식당에서 견습 생활을 할때 감자를 다루는 일이 음식의 중요한 구성중 하나였다. 요리법은 찌고, 튀기고, 굽는 것 외에 다양한 조리법을 많이 넣게 된다. 매일 아침 감자 10㎏을 고기요리에 곁들이는 구성을 만들었다. 오븐에 굽거나 소금을 약간 넣은 물에 끓여 익히며 곱게 갈아낸다. 이렇게 뜨거운 감자에 달걀노른자, 우유, 향신료 등으로 다양한 가니시를 만든다.

감자는 전분 함량에 따라 각기 다른 요리에 사용된다. 프렌치 포테이토는 전분량이 많은 감자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전분량이 많다는 것은 익히면 쉽게 부셔지고, 갈아내면 포슬포슬한 식감을 준다. 뇨끼, 베이크트 포테이토, 두체스 포테이토 등은 이런 감자를 사용하면 좋다. 익힌 감자는 매우 뜨거울 때 작업해야 한다. 온도가 식으면 다른 재료와 잘 섞이지 않고 간을 맞추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단단한 식감을 주는 감자가 있다. 이런 감자는 전분량이 적은 감자이다. 쪘을 때 단단해 지기 때문에 밀랍 포테이토(waxy potato)라고도 불린다. 감자를 채로 썰었을 때 감자볶음 만들 정도로 모양을 유지해 요리에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우리나라의 감자요리는 전분량이 적은 감자가 더 적당하다. 감자를 국에 넣어도 전분량이 적으면 좀 더 깔끔하고 담백하게 만들 수 있다. 감자나물에 전분량이 많은 감자를 사용하면 모양을 유지하기 전에 쉽게 부셔져 버린다.

감자요리는 나라마다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오래된 전통을 가졌다고 하기에는 역사가 짧다.

감자는 16세기 후반 탐험가에 의해 신대륙으로부터 유럽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자의 모양이 지금처럼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여 사람들이 혐오감을 가질 정도였다. 또 칼로 자르면 표면이 검게 변하여 악마의 과일이라며 종교적으로 거부감이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다른 곡식과는 달리 줄기는 식물과 같은데, 뿌리에 주렁주렁 감자가 열리는 것이 기괴해 보였다고도 한다.

종교 혹은 외형에 대한 거부감 이외에도 나라에 따라 폭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1834년 감자폭동(potato riot)이라 불리는 유혈사태가 있었다. 이 사태의 원인은 제정 러시아 당국이 감자를 농노에게 강제로 재배하게 하면서 발생했다. 농노들은 이에 저항하여 관리들을 살해하고 농기구를 파괴했다. 제정 러시아 당국은 농노들을 총으로 무력진압하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거나 강제로 군에 편입시켰다. 표면적으로는 감자재배를 둘러싸고 촉발되었지만, 봉건적인 채무와 토지에 예속된 농노와 봉건지주의 갈등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감자밭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충동은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전국토 뿐만 아니라 감자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직접적인 무력 충돌 이외에 이번 전쟁에서는 많은 드론과 미사일이 사용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리고 있다. 러시아의 폭격으로 인해 비옥한 우크라이나의 농토에 확인되지 않은 폭발물, 미사일 전해등이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 이로 인해 전쟁이 끝나도 완전하게 감자농업이 정상화되기 위한 복구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름에 들어 러시아의 바그너그룹의 쿠데타 등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다소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햇감자가 출하되면서 국내 감자가격은 안정을 찾고 있다. 감자탕과 프렌치프라이도 높아진 가격만 빼면 예전과 같이 식탁으로 돌아왔다. 한때 존재감이 미미했던 감자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처음에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쟁이 지속되며 에너지 가격 및 물가 인상 등으로 지구촌 전역에 함께 고통을 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몰랐던 감자의 소중함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감자는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깝지만, 주요리인 육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강한 향을 내는 음식을 부드럽게 해주는 등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존재다. 부드러운 감자의 최다 생산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에도 평온함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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