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또 하나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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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또 하나의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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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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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슬픈 사연들이 많다. 세월호 사건은 세월이 흘러가도 당사자인 부모들은 아직도 가슴속에 아픔의 상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용산의 이태원 참사, 충복 오송 참사, 채 상병 순직 사건 등 가족을 잃은 아픔을 감당하는 건 여전히 유족의 몫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 있고 상처로 남아 있다.

슬픔을 잊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아마도 세월이 가도 잊지 못한다. 아니 잊혀지지 않는다. 슬픔은 영원히 인생의 귀한 재산이다. 비극적인 면으로는 슬픔은 우리를 거칠게 만들고 긍정적으로 때로는 더 좋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다.

성경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다. 동방에서 가장 의롭고 부자였던 욥은 하루 아침에 자녀가 죽고 재산이 사라지고 욥 자신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다. 욥의 아내는 욥에게 그래도 당신의 믿음을 지키겠는가 말하며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한다.

시련을 만날 때 첫 번째 반응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마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거칠고 반항적으로 변한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아픔과 시련을 주시는가?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심하게 분노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고의로 재난을 만드시거나, 병이 들어 죽게 하거나 파산을 하게 하거나 그 밖의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 버려야 할 몇 가지 편견들이 있다. 먼저 이 땅에서의 재난이나 아픔, 슬픔, 사고, 죽음은 죄를 지은 대가의 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원죄 때문에 이 땅에 고통과 죽음이라는 형벌이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사고나 죽음이 반드시 죄의 결과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사고나 죽음을 만나면 무의식중에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죄는 모든 인간 고통의 비극의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그 고통이나 아픔을 느낄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느낄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참으로 이 땅에서 가장 큰 비극은 고통 그 자체를 느낄 수 없는 무감각이다. 다시 말해서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이 가장 큰 형벌이다.

손과 발에 큰 상처가 났는데 고통을 못 느낀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바늘로 손바닥을 찌르고 발바닥을 찔러도 고통을 못 느낀다면 이것은 큰 문제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을 느낀다는 것,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좋은 선물이요 자산이 될수 있다. 인간에게 눈물은 믿음이 부족한 결과도 아니고 연약한 모습도 아니다. 어떤 생물학자는 고등생물보다 하등생물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벌레나 곤충은 자극에 반응할 뿐이며 고통을 덜 느낀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슬픔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임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이나 비극을 만날 때 우리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그 첫 번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그 상황이나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음속에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혹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인정 할수 가 없다. 어떤 일이 실지로 일어났음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슬픔을 이해함으로 감정의 표현이 생기고 표현을 통해 상처받은 상한 감정들이 치유가 된다. 그래서 슬픔은 표현하는 것이 좋다. 눈물로 표현되지 않는 슬픔은 회복이 느리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슬픔이나 비극적인 일을 당하면 자기연민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고 자신만의 동굴에 숨어버리고 싶어 한다.

인생은 죄로 인한 슬픔이 가장 슬프고 절망스럽다. 그래서 힘들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삶의 무거운 고통의 짐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슬픔에 대한 인간의 정상적인 반응의 하나는 분노이다. 그 분노는 격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나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기 보다는 화를 내고 분노한다.

우리에게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우리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면, 슬픔을 잊지는 못하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바다의 풍랑 때문에 배가 빨리 가듯이 슬픔이나 고통을 잘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다면 고통은 때로는 큰 자산이고 유익한 재물이 된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인생의 슬픔을 축약하여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이다. 죽음은 영원히 사라졌다. 눈물도 사라지고, 통곡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졌다. 만물의 처음 질서는 다 사라졌다.”(계21:4)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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