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아한 세계에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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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아한 세계에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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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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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가장으로서의 세계가 있다. 여자들 보기에 뭔 폼 잡느냐고 할 수 있지만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더운 여름에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해진 서류 가방과 사은품을 들고 땀을 흘리며 걸어 가는 영업맨을 보노라면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찡해진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영화 ‘우아한 세계’는 이러한 남자의 세계를 기가 막히게 그리고 있다. 강인구(송강호 분)는 조폭 조직 들개파의 넘버 스리인데 회장이 넘버 이고 그 밑에 회장의 친동생이 넘버 투. 자신은 고생은 다 하지만 회사 구조상 절대 더 올라갈 수 없다. 그래서 인구의 친구이자 경쟁 조폭 집단 자갈치파의 현수(오갑수 분)는 자신의 조직으로 스카우트하려 하지만 인구는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줬던 회장님을 버릴 수가 없다.

인구가 가장 서러운 건 자신은 조폭을 생계 수단으로 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그를 부끄러워한다는 점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맞고 깨지고 칼 맞고 들어오는 남편을 아내는 대놓고 깡패라고 한다. 첫째 아들은 캐나다에 유학 가 있으니 불평도 없지만 같이 사는 딸은 일기장에 아빠가 칼침 맞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써 놓는다. 아내에게 어떤 구박 소리를 들어도 씩씩하던 인구도 그 일기장을 보고는 깊은 충격과 슬픔을 받는다.

인구가 아내의 간청으로 조폭을 그만두자 돈이 없어 캐나다 유학 갔던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생겼다. 이 말들 듣고 인구는 친구 자갈치파로 들어가서 다시 조폭 생활을 시작한다. 자갈치파가 들개파를 흡수하는 데 세운 공이 있어 좋은 대우를 받고 옮겨 간다. 돈을 좀 벌게 되자 아내와 딸은 조폭 남편과 아빠가 부끄럽고 교육에 좋지 못하다고 모두 캐나다의 아들 있는 곳으로 가 버리고 인구는 혼자 남게 된다.

인구는 협박하고, 때리고, 강제로 지장을 찍게 하는 등 여전히 조폭 직장 생활을 한다. 조폭과 기러기 아빠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당뇨병까지 걸리게 된다. 어느 날, 여전히 피곤한 조폭 직장일을 마치고 들어 오니 DHL로 캐나다에서 비디오가 하나 배달됐다. 인구는 들뜬 마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비디오를 본다.

캐나다에 간 가족들의 ‘우아한’ 삶의 모습이었다. 좋은 집에, 가끔씩 야외에 피크닉 가고, 해변에 놀러 가고, 집 정원에서 가족들이 장난치고 노는 모습. 행복하고 우아하다. 그런데, 흐뭇하게 바라보던 인구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먹던 라면 밥상을 발로 걷어차 버린다. 혼자말로 욕을 하며 울던 인구는 엎질러진 라면을 걸레로 닦는다. 비디오에는 우아한 세계가 인구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 영화 내용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즉각 이해되었다. 라면을 엎어버릴 때 인구는 ‘난 당뇨병이 걸릴 정도로 일을 하는데 너희들은 그 우아한 세계에서 잘 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족의 우아한 세계를 위해 죽어라 일하지만 정작 가족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가장과 비교되어 비난을 받거나 눈치를 봐야 하는 남자의 삶을 패러디로 그린 영화다.

그런데, 이 남자의 세계를 아내나 자식들은 이해할까? 여자는 남자의 그런 세계를 어떻게 볼까? 물론 고생한다는 생각도 하지만 오히려 여자는 애 키우고 밥 하고 폼 안 나는 일만 평생 했는데 자기들은 밖에서 술 마시고 골프 치고 갖은 우아한 세계에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애가 크게 아플 때나 말 안 듣고 빗나갈 때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여자의 세계다. 아니러니하게도 우아한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셈이다. 송강호가 보는 ‘우아한 세계’를 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남자는 자신이 힘든 일을 하는 대신 가족이 우아한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이 궂은일을 하고 가족 뒤치다꺼리를 하는 중에 남자는 밖에서 우아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우아한 세계에 사는 걸까?

관점에 따라 답은 다르다. 남성이 보기에는 여성이, 여성이 보기에는 남성이 우아한 세계에 살고 있다. 각자는 슬픔의 세계에 살고 상대방은 우아한 세계에 사는 셈이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은 각자의 깊은 슬픔을 갖고 있고 그 슬픔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깊은 슬픔이 안에 쌓여 있다가 노후에 서로에게 폭탄이 되어 날아간다. ‘벌어다 준 돈으로 평생 살았는데 이제 당신도 좀 벌어 보지’라는 말은 비수같이 꽂힌다.

송강호의 우아한 세계는 남성의 관점이다. 여성의 관점에서 우아한 세계는 그 반대다. 마치 양극과 음극처럼 분리되어 있는 각자의 깊은 슬픔만 갖고 있을 따름이다. 서로가 이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공감은 필요하다. 공감(compassion)은 깊은 슬픔(passion)을 같이(com)한다는 뜻이다. 나의 슬픔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슬픔도 같이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한 듯하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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