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파트를 어떻게 3억원이나 싸게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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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파트를 어떻게 3억원이나 싸게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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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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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특별한 이득이 얻어지는 게 아니면 위험 부담을 지는 것을 꺼린다. 변화를 주기보다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손실은 곧 고통이다. 우리는 그 고통이 너무 크다고 생각되면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돌멩이가 먼 곳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본다면 얼른 피하겠지만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면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타조가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듯 고통스러운 현실을 아예 외면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파괴로 끝나는 극단적인 고통 회피다. 고통이나 손실을 혐오하는 심리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그 아파트를 얼마에 샀는데, 어떻게 3억원이나 싸게 팔아요?”

맞벌이 부부 김순미(가명·45) 씨는 아파트를 싼값에라도 팔자는 남편의 간청을 뿌리쳤다. 김 씨 부부가 이 아파트를 산 것은 부동산시장이 호황을 구가하던 3년 전이다. 그동안 아파트값이 떨어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팔려니 미련이 컸다. 게다가 그동안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고생했던 온갖 일들까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 부부는 결국 지금 같은 불황기에 아파트를 싼값에 팔기보다는 일단 매도 시기를 미루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처럼 산 가격보다 손해 보고 팔지 않으려는 손실 회피는 합리적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심리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막상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큰 힘으로 작용한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매매된 6000건 이상의 아파트 거래 자료를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주택시장 속 손실 회피 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스턴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아파트 시세가 40% 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물건을 분석해보니 최고가로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낮은 가격에 샀던 사람들보다 매도호가가 높았다는 점이다. 현재 형성되는 시장 가격을 무시하고 옛 가격을 고집한 셈이다. 그들이 내놓은 가격은 실제 거래 가격보다 최고 35%나 높았다. 결과는 뻔했다. 매수자들이 요구하는 가격대보다 턱없이 높으니 팔리지 않았다. 대출 규제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비교적 많은 금액을 은행 대출에 의존한다. 집값이 급락할 경우 대출금을 갚고 나면 새집을 계약할 수 있는 ‘밑천(Down payment)’이 사라진다. 이런 금전적 제약으로 집값이 크게 떨어지면 집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러니 현 시세와 동떨어지지만 구입 당시의 가격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고가매입 집주인, 시세와 동떨어져도 구입가격 고수 ‘뚜렷’

이런 이유로 불황이 오면 이런 손실 회피 경향으로 가격이 먼저 하락하기보다 거래량이 먼저 줄어든다. 거래량이 가격을 선행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거래 감소가 지속되면 결국 가격은 내려간다. 실제로 주택시장을 지켜보면 단기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은 매도자들의 매물이 갑자기 늘어나서 생기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매도자들은 여전히 손실 회피 성향을 갖고 있어 처음부터 싼 매물을 많이 내놓지 않는다. 손실 회피라는 인간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자의 관망세가 장기화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정이 급한 매도자들이 하나둘씩 호가를 낮춘다. 말하자면 단기적인 가격 하락은 ‘매물 증가’보다는 ‘수요 감소’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매입 세력 두절이 결국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장 흐름을 읽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거래량만큼 정확한 것은 없다. 가격은 속여도 거래량은 못 속인다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래량은 매수자의 심리를 보여준다. 거래량이 많다는 것은 매수세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고 거래량이 줄고 있다는 것은 매수심리가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트 거래량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0월 서울지역 아파트 거래량은 2314건으로 2000건대로 뚝 떨어졌다. 올해 최고치인 8월 3861건에 비하면 60% 수준이다. 피부로 느끼는 올 아파트시장 정점은 8월이었던 것 같다. 시장은 추세라는 게 있다. 시장은 거래량이 줄고 가격이 떨어지는 조정국면에 진입했으므로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영원한 상승도 없지만 영원한 하락도 없다. 집값이 다시 반등할 것이다. 그 신호탄은 거래량 증가이다. 특히 바닥권에서 거래량 증가는 의미 있는 지표다. 시장 흐름의 바로미터인 거래량을 항상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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