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포항의 문화예술
  • 이진수기자
갈 길 먼 포항의 문화예술
  • 이진수기자
  • 승인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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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문화재단 대표 3년간 공석은
실력 검증된 전문가 구하기 위한 것
최근 임원 자격 변경으로 대표 선정
이제 일반인도 대표될 가능성 충분
‘장고 끝에 악수’로 문턱 낮춘 것은
포항 문화 수준의 현주소로 씁쓸

8일 포항문화재단에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했습니다. 이상모 전 경상북도 동해안정책자문관입니다.

포항시는 2021년 1월 차재근 초대 문화재단 대표가 2년의 임기 만료로 물러난 후 3년 간 대표 공석에서 최근 이 대표를 선정했습니다.

문화재단 출범부터 대표 선임은 난제였습니다.

포항시는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2016년 12월 재단을 출범했으나, 의욕과 달리 재단을 이끌어갈 수장을 2년이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2019년 1월 중앙 문화계에 상당히 알려진 문화 전문가 차재근 씨를 대표로 선정했습니다. 차 대표는 재임 동안 재단의 초석을 다졌으며, 포항이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돼 5년 간 최대 200억 원을 지원받는데 기여하는 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법정 문화도시 지정은 그동안 철강도시 포항이 어느 정도 문화도시로 이미지를 전환하게된 계기가 됐습니다.

차 대표가 포항을 떠나면서 재단은 또 한번 장기간 대표 공석을 겪게 됩니다.

포항시는 재단 출범이나, 차 대표 퇴임 후 5년 간 대표 공석에 대해 늘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포항 문화발전을 위해 제대로 된 문화 전문가를 구해야 한다. 지역 문화와 중앙의 문화를 두루 알고 접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포항에 그만한 인물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대표 공석이 길어진다는 여론의 지적에도 문화에 대한 비전문가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오면 오히려 지역 문화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포항시는 지난해 11월 임원(대표이사) 공모에 들어가 10명 가운데 이 대표를 선정했습니다.

이 대표가 선정된 결정적 요인은 아마 재단의 임원 후보자 자격요건의 변경일 것입니다.

한번 살펴 볼까요. 2018년 12월 임원 후보자의 ‘포괄적 자격요건’은 (1)문화예술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며 지역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비전과 마인드를 갖춘 인사 (2)경영능력과 리더쉽, 도덕성 등을 고루 갖추고 중앙과 지방의 문화예술기관, 단체 간 원만한 소통이 가능한 인사 (3)공공기관, 민간부문, 법인, 단체 등에서 조직관리 근무경험이 있어 문화재단을 책임경영할 수 있는 인사입니다.

여기에 ‘구체적 자격요건’에는 (1)문화재단에서 대표이사 또는 3년 이상 재직경력 (2)정부투자기관이나 이에 상응하다고 인정하는 기관에서 4급 이상 상응하는 직에서 3년 이상 경력 (3)국가 또는 지방공무원 4급 이상 근무한 경력자 중 문화예술 관련 분야에서 2년 이상 재직 (4)문화예술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년 이상 해당분야 경력 (5)〃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3년 이상 해당분야 경력 (6)〃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5년 이상 해당분야 경력 (7)대학에서 문화예술관련 학과의 부교수 이상의 직에 2년 이상 재직 (8)문화예술 전문가로서 문화재단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사람입니다.

포괄적 요건(3개 항)은 두리뭉실하지만, 중요한 구체적 요건(8개 항)은 문화예술의 ‘전문가’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포항시는 지난해 7월 28일 이 같은 임원 자격요건을 변경합니다.

기존 포괄적 요건에 구체적 요건의 8번 조항인 ‘문화예술 전문가로서 문화재단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사람’을 넣어 총 4개 항으로 대폭 간략화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의 자격요건(4개 항) 중 하나의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이면 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재단 대표를 문화 ‘전문가’에서 ‘일반인’도 할 수 있도록 자격요건을 대폭 완화한 것입니다.

공모 4개월 전에 자격요건을 이렇게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요

포항시는 “기존 임원 후보자 자격요건은 기준이 너무 높아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자격요건을 대폭 완화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포항시가 수년 간 ‘뚝심 있게 인재 구하기’를 하다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 꼴입니다. 궁여지책의 자격요건 변경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지 않았나 합니다.

포항시가 스스로 문턱을 낮춘 것은 앞으로도 정치권 등 외부 입김으로 문화 비전문가가 재단의 대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해 상당히 우려됩니다.

이 대표는 오랫동안 이병석 국회의원(포항 북)의 보좌관 및 비서관으로 활동해 정치인이라 할 수 있어도 문화 전문가는 아닙니다.

이 의원의 정계 은퇴 후 이 대표는 독도재단 대표이사, 포항의 도시전략연구소 소장, 경상북도 동해안정책자문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문화적 소양이 상당하고, 중앙 정치권과의 인맥으로 각종 사업에 따른 예산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문화적 소양과 50만 도시의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지역 문화발전을 추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며, 또한 정치와 예술을 한 묶음으로 볼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 년간의 대표 공석은 오직 실력 있고 검증된 문화 전문가를 구하기 위한 차원인데 결국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보면 포항은 지역 도시에 불과하며, 더욱이 문화예술계에 능력 있는 인사들은 수도권 선호로 4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임원 예우를 해도 포항을 선택할 사람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포항이 국내 최대 철강산업도시에 법정 문화도시이며, 환동해 중심도시로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해도 그들에게 포항은 여전히 문화예술의 변방이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 대표의 문화적 역량을 떠나 임원 자격요건까지 바꾸면서 재단의 대표를 선정해야 하는 포항의 현 주소가 그저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문화예술에 있어 아직도 갈 길이 먼 포항입니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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