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의 죽음
  • 모용복국장
마라토너의 죽음
  • 모용복국장
  • 승인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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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킵텀
운전중 차량 추락사고로 숨져
꿈의 기록 1시간대 진입 연기
 
인류문명 발달은 도전의 역사
조만간 ‘제2의 킵텀’이 등장해
魔의 2시간대 벽을 깨트릴 것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길게는 100년까지 사는 동안 마라톤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마라톤이 그만큼 힘든 스포츠 경기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서 마라톤과 인생은 다르다. 인생에 있어서는 순위가 없다. 지치면 잠시 쉬어가고 아프고 병들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라톤은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질주해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중도에 멈출 수 없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경기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2시간 벽을 깰 것으로 기대를 받던 케냐 마라토너 켈빈 킵텀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지난 11일 밤 고국인 케냐 리프트밸리 지역 엘도렛 인근 도로에서 도요타 차량을 운전하던 중 운전미숙으로 도랑에 추락해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차량에 탑승해 있던 코치도 현장에서 사망했다.

1999년생인 킵텀은 지난해 10월 열린 시카고 마라톤에서 42.195㎞를 2시간35초에 완주해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100m를 평균 17초에 뛴 셈이다. 이 기록은 지난주 세계육상연맹에 의해 공식 승인됐다. 앞서 같은 케냐 출신의 엘리우드 킵초케가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01분09초를 34초 앞당긴 기록이다.

킵텀은 꿈의 기록인 ‘서브2’(2시간 이내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 달성할 1순위 후보로 꼽혔다. 20대 중반의 나이로, 킵초케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1시간대 기록까지 달성할 것이라고 기대됐다. 킵초케는 운동선수로는 이미 환갑을 넘긴 40세여서 그보다 15살 어린 킵텀이 2시간 대 벽을 무너트릴 것이란 기대는 당연했다.


킵텀은 2022년 발렌시아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달려 2시간1분53초의 기록을 세웠다. 첫 마라톤에 나선 선수 중 가장 빠른 기록이자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후 이듬해 4월에는 런던 마라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28초 앞당긴 2시간1분25초로 우승했다. 6개월 뒤 열린 시카고 마라톤에서는 세계 최초로 2시간 0분대 기록까지 세웠다.

그의 사망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탄치 않은 인생사 때문이다. 킵텀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시골 마을 쳅사모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고향 마을 쳅사모에서 염소와 양을 키우며 살았다. 사고 현장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러다 케냐로 전지훈련을 온 선수를 따라 13세 때 육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마라톤 트랙이 없는 도로를 맨발로 뛰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건 2019년부터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2022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첫 메이저 대회에 출전할 때도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빌린 신발을 신고 뛰어 우승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열린 시카고 대회에서 2시간35초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마라톤에서 2시간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한계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킵텀의 등장으로 넘어설 수 있는 기록으로 인류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그러나 불과 35초를 남기고 허망한 교통사고로 사망해 마라톤 1시간대 진입은 당분간 연기될 전망이다. 신이 그를 너무 일찍 데려간 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인류의 도전을 허용하지 않은 때문일까?

하지만 인간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인류 문명은 도전의 역사다. 수많은 실패 끝에 무에서 유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기에 오늘날 인류 문명이 존재한다. 킵텀은 가고 없어도 제2의 킵텀이 등장해 끝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 틀림없다. 그 주인공이 한국 선수이면 더욱 금상첨화이리라.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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