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대비 비상 진료체계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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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 대비 비상 진료체계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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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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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또다시 파업을 무기로 의대 증원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의협은 설 연휴 직전 파업을 주도할 비상대책위원장을 새로 선출했다. 다행히 전공의들은 당장 파업 결정을 미뤘지만, 연차 수련을 마치는 2월 말 이후 파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응급실을 끝까지 지켜야 할 응급의학과 전문의 단체인 ‘대한응급의학의사회’까지 파업 참여를 선언했다.

의사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을 결정했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라는 별도 협상 테이블에서 정부와 28번이나 만나는 동안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정부가 앞으로 의사가 부족해진다는 국책 연구기관과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 결과, 의료취약지에 부족한 의사 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제시하면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믿을 수 없다거나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안 된다는 억지만 계속했다. 적절한 의대 증원 규모를 제시하라는 정부 요청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의사협회는 의대 증원을 협의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이후 파업을 무기로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해왔다. 2012년 포괄수가제도 도입, 2014년에는 원격의료 도입, 2020년 의대 증원처럼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부 정책을 파업으로 무산시켰다. 지난 1년간 의사협회가 의대 증원에 대해 정부와 협의할 생각이 없었던 이유는 정부가 의대 증원을 결정하더라도 파업으로 무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의사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전 의협 회장의 말은 이 같은 의사들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의사들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철회하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 파업을 중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붕괴 위기를 맞고 있는 의료체계를 살려내기 위해서 반드시 의사를 늘려야 하니 정부도 더 이상 의대 증원을 미루기 어렵다. 이번 의사 파업은 예전에 비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하면 환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대학병원을 포함한 큰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응급환자와 중증 환자 진료가 지연되지 않도록 비상 진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의사 3명 중 1명이 전공의이니 그만큼의 경증 환자 진료를 미루거나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받게 하면 된다. 전체 입원환자 중 중증 환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급종합병원 40%,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23%이고,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환자가 20~30% 정도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병원들이 비상 진료체계에 참여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비상 진료체계에 참여하는 병원들에게 앞으로 있을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 의료 질 평가 지원금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시도 비상 진료체계를 잘 조직하고 운영하는 대학병원에 더 많은 의대 정원을 배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대책으로 내놓은 ‘의료기관 네트워크’와 비상 진료체계는 사실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의 경증 환자를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받도록 하면 환자 의뢰 진료비를 추가 지급하고, 응급의료 기금 등을 활용해 전공의 대신 당직을 서야 하는 전문의에게 적정 수준의 당직비를 지급해야 한다.

국민도 비상 진료체계를 지지해 줘야 한다. 경증 환자는 대학병원을 포함한 큰 종합병원 응급실 대신 작은 동네 병의원을 이용해야 한다. 병원이 예약된 진료를 연기하더라도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진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해해 줘야 한다. 이번에도 의사 파업에 가로막혀 의대 증원에 실패하면 앞으로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의사들이 반대하면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는 의사 파업에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응급실, 중환자실 같은 필수 진료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우는 파업에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환자를 잘 진료하라고 준 권한인데, 환자를 볼모로 국민을 협박하는 무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응급환자 곁을 지켜야 할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비우고 파업하겠다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응급실 전담전문의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을 개정해 내과, 외과, 소아과 등 관련 전문의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래 이렇게 하고 있는 나라가 더 많다.

이제는 의사들이 파업을 무기로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나쁜 전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 진료 대란은 계속될 것이고, 2026년부터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6600병상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 지방 의료체계는 의사를 구하지 못해 붕괴될 것이고, 2030년 우리나라 GDP 대비 의료비는 미국 수준으로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필수적인 의료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의사들이 파업하겠다고 협박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행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의료에 미래는 없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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