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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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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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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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묵정밭을 밟고 간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산치거리 개간지. 바닥 드러낸 저수지엔 마른 덤불만 엉클어져 어수선하다. 몇 뼘 안 되는 삐뚜름한 터, 그래도 제법 바지런한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밭 가장자리에 나지막한 돌담이 웅크려 앉았다. 겨울 햇살 하릴없이 길게 누운 비탈에 바람이 지나다 흩뿌려 놓았는지, 무념의 도깨비바늘이 바짓가랑이 잡는 아버지의 밭이다.

밭이라 하기에는 잡풀이 우거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인 데다 길은 무너져 들짐승도 겨우 드나들 것 같은 묵정밭. 오랫동안 방치된 손잡이 삐딱해진 삽, 녹슬고 삵은 곡괭이가 여기가 밭입네 한다. 바람이 이리저리 밟고 지나도 모로 드러누운 검불이 미동도 없는 저곳, 그 오랜 세월 혼자 가슴에 품고 지냈던 쥐꼬리만 한 밭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엄마와 결혼했다. 시골의 땅 부잣집 아들이었던 아버지와 세무서 관세과장 딸로 부유하게 자랐으나 전쟁으로 외할아버지를 잃고 졸지에 가난해진 도시 처녀였던 엄마. 외할머니는 남편과 장남을 난리에 잃고, 만석꾼 지기라는 중매쟁이의 말만 믿고 딸을 덥석 시집보냈다. 할아버지는 사방 십 리 안에서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멀끔한 인물에 기골도 장대했지만, 집안에서는 자린고비도 울고 갈 구두쇠였다.

셋째 아들인 아버지는 결혼 후 보리쌀 두어 되 얻어 큰댁에서 쫓겨나다시피 분가했다. 막 스무 살의 아버지는 전투경찰에 지원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제대할 즈음 마지막 근무지는 제주도였다. 그해에 사라호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해 온 나라가 난리였는데 만삭이었던 엄마는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웠다고 한다.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통신이 지금처럼 원활했던 때도 아니었으니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제대 후,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마을 공판장쯤 되려나, 직장이 없었던 아버지는 집에서 주로 술을 떼어다 팔았다. 옛날엔 소주의 도수가 높아 술 항아리에 물을 타서 댓 병에 옮겨 팔기도 하고, 막걸리에 물을 타서 팔기도 했다. 그럭저럭 살 수는 있었지만, 서른도 안 된 아버지가 하기에는 성에 안 찼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동네 뒷산 치거리을 개간했다. 삽과 괭이로 종일 돌을 고르고 풀을 뽑아 밭을 일구었다. 만석꾼 아버지를 둔 아들인데도 막상 땅 한 떼기 없던 당신은 계곡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어찌어찌 너덜겅에 손바닥만 한 밭의 주인이 되었다.

언니가 태어났던 해, 엄전하고 참한 처녀가 아버지를 찾아왔더란다. 제주도에서 배 타고 버스 갈아타고 물어 물어서 그 골짝까지, 종아리 보일락 말락 한 까만 치마에 무명 저고리 곱게 입고 긴 머리 한 가닥으로 땋은 처녀가. 집성촌인 대소가에 소문은 바람보다 빨라서 온 마실이 수군거림으로 소낙비 양철지붕 두드리듯 했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몰래 처자를 안방으로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복무할 때 총각행세를 했더란다. 처녀 집에서는 아버지를 사위로 점 찍어 밥도 먹여주고 처녀와 만나게도 했는데, 그러다 제대하고 집에 다녀오겠다 하고선 함흥차사였다나. 할머니는 가진 돈은 없고 시집올 때 가져온 얼마 안 되는 금붙이를 처녀에게 쥐여 주고 돌려보냈단다. 그동안 아버지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생전의 엄마가 내게 들려준 탐라에서 불어온 바람의 이야기다.

겨우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몇 차례의 병마와 마주하면서 기운이 쇠퇴하고 기억의 귀퉁이 갈피 갈피가 헐거워졌다. 나는 자주 아버지 곁을 지켜야 했고, 그즈음에 아버지와 비밀 한 가지를 공유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도 아버지 젊었을 적처럼 내 땅 한 평이 없었다. 지금껏 배곯지 않고 살았으면 되었지, 하면서도 내심은 눈곱만한 거라도 내 것이 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내 욕심보를 눈치챘던 걸까. 아버지는 50년 넘게 아무도 모르는 땅이 있다고 했고 솔깃해진 나는 아버지를 졸라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60여 년 전 아버지가 개간한 산비탈 밭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 문맥 없는 바람으로 가슴에 욕심이 펄럭거렸다. 나도 이제 곧 땅 주인이 되리라, 한 움큼 뜬구름을 잡고 세금 낸 영수증을 찾아 주소를 확인하고 평소엔 느림보 뺨칠 게으름인데 발에 바퀴를 단 것처럼 바지런히 움직였다. 토지등기부를 열람하고 면사무소며 법원 등기소, 민원실까지 백방으로 알아보고서야 그 바람은 잦아들었다.

아버지가 국세로 내었던 묵정밭의 5년 치 재산세를 환불받았다. 그 전에 낸 건 이미 국고로 귀속되었다고 했다. 이건 비밀인데, 오래도록 아버지가 아무도 모르게 재산세를 내던 그 개간지의 등기는 내가 태어났던 해에 다른 이의 명의로 바뀌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사진첩에서 얼핏 보았던 검정 치마 흰 저고리의 댕기 머리 처녀, 엄마의 이야기 속 그 여인으로.

겨울바람도 울음 멈추었고 아버지, 엄마도 잠든 솔숲. 이제 곧 봄 들꽃들이 자연을 채색할 시간이다. 여태 겉욕심으로 펄럭거리느라 여물지 못했던 내 모지랑이 마음 밭에 제비꽃의 겸양謙讓을 심고 가꾸어 보리라.

푸들거리던 바람, 고요히 묵상에 든다.

김지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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