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위 와중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 전원이 일괄사표를 냈을 땐 미국 쇠고기 협상 실패 책임을 자인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의 일괄 사표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보건복지, 농림수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3명만 교체하고 내각 개편을 끝냈다. 촛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지 모른다.
이 대통령은 소폭 개각과 관련해 “교체 폭이 크지 않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내각은 쇠고기 파동이 있기 전 두 달 정도 일한 것인데 제대로 일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일리가 없진 않지만 그야말로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이다.
이번에 경질된 각료들은 목이 열 개라도 장관 자리를 지킬 자격이 없다는 게 지배적인 여론이다. 정운천 농림수산장관은 `광우병 촛불난동’을 초래한 책임이 위중하다. 김성이 보건복지부장관도 국민 보건 주무장관으로 “30개월 이하의 소만 잡으면 잔인하다”는 등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았고, 김도연 교육장관은 국고를 모교에 퍼준 반개혁적 태도로 지탄받아왔다. 경질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얘기다.
그러면 유임된 각료들은 모두 국정실패 책임에서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 말이 막힌다. 누구보다 한 총리는 경질된 각료 3인의 책임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고를 초래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역시 경질 `영순위’로 꼽혀왔다. 그런데 강 장관 대신 최중경 1차관이 경질됐다. 장관대신 차관이 경질되는 기막힌 인사가 이번 개각이다.
물론 이 대통령의 “모든 게 나의 책임”이라는 자책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내각에 전가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한 달 전 촛불이 타오를 때 “국민 눈높이에 모자람이 없도록 개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문에 민심은 이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를 무시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판단되면 재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게 옳다. 사람을 잘못 썼다는 평가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인정이나 온정, 인연에 얽매어 무능한 각료들을 껴안고 가봐야 그 책임을 대통령이 져야하는 상황을 피하기 힘들다. 소폭개각에 따른 부담은 앞으로 전적으로 이 대통령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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