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의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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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의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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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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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영 (주)에스 탑 대표 가을이면 으레 풍년을 노래하지만 보릿고개의 기억이 뚜렷할수록 수확에 대한 기대는 강렬하다. 묵은 곡식은 바닥나고 햇보리는 채 여물기 전인 초여름께가 아니라도 사시사철 끼니를 걸러야 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기껏 생일날에나 쌀밥을 구경할 수 있었으며, 그나마 생일 임자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은 잡곡밥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랬으니 들녘에 누렇게 일렁이는 황금물결을 바라보며 어찌 저절로 어깨춤을 들썩이고 굿거리장단을 흥얼대지 않았겠는가.  이제 웬만큼 먹고 살게는 되었다지만 오히려 농촌은 피폐해져가는 모습이다. 늘어나는 빚더미에 걸터앉아 한숨짓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며, 도시와 벌어지는 교육·의료 격차도 공동화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7%를 겨우 웃도는 350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통계 숫자가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젊은이들은 어느새 거의 떠나버리고 노인네들만 남은 결과다.  요즘 농촌을 짓누르는 더욱 큰 시름은 쌀값 문제다. 우리의 쌀시장 개방은 2014년까지 유예됐지만 그 기간 동안에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는 외국산 쌀의 양은 매년 늘어난다. 정부 수매도 폐지됐다. 이러고 보니 시중 쌀값이 안정되지 않고 있다. 이 바람에 며칠 전 안동과 영천, 경주지역 농민단체들이 쌀값 보장과 농업예산 증액편성 등 `농민 생존권 쟁취’를 요구하며 벼를 불태우고 벼논을 갈아엎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유엔이 전세계 30억 인구의 먹거리인 쌀의 값어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쌀은 생명이다(Rice is Life)”라는 구호를 내걸고 2004년을 `쌀의 해’로 정했지만 이처럼 쌀을 에워싼 정치·경제적 현실은 혹독하다.  농식품부와 통계청은 엊그제 올해 쌀 생산량이 484만3000t에 이르러 4년 만의 최대 풍년농사를 지었다고 발표했다. 여름철에 땡볕 더위가 쏟아지고 태풍도 비켜간 덕분이다. 하지만 풍작으로 인해 오히려 쌀값이 떨어지고 재고가 쌓일까 걱정이라는 우울한 소식도 들려온다.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식생활이 바뀜에 따라 소비는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낟가리를 쌓아 올리며 흐뭇함과 심란함이 교차하는 농업인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풍작이 반갑기는 하지만 풍년가를 부르기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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