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도시에는 암흑보다 무서운 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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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도시에는 암흑보다 무서운 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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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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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깊은 충격으로 대하면, 그게 어떤 작품이든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막연한 불안함, 심하면 거부감까지 갖게 된다.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있을 법한 세계’가 영상을 통해 눈앞의 현실로 그려지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결코 실체는 없으나 상상을 통해 각자의 마음 속에 그려낸 눈먼세계와 냄새까지 영화로 담을 수 있을까.
 
보이는 자가 더 두려운 세계 `눈먼 자들의 도시’
 
 
  베스트셀러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서술자는 독자들 곁에 바짝 붙어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이 소설에는 따옴표도 없다. 서술자는 인물 모두를 관찰하다가 인물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간혹 그들의 심리를 엿보고 이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수많은 소설이 영화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서술자의 역할이라는 면에서 `눈먼자들의 도시’ 만큼 영화로 옮기기 힘든 소설을 드물 것 같다.
 주된 사건이 시력을 잃는 `실명’(失明)인데다 등장인물들은 앞을 못보는 `눈먼자들’이니 이들의 `시각’이라는 것을 영화에서 드러내기 쉽지 않다. 자신의 눈이 멀어가는 것 같은 소설 독자들의 착각은 영화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작 소설의 열성 팬이라면 20일 개봉한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낄 것 같다.
 사실 영화에 대한 기대는 원작소설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걸출한 데뷔작 `시티 오브 갓’을 내 놓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줄리안 무어, 대니 글로버,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기무라 요시노 등 여러 나라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 칸영화제가 올해 개막작으로 이 영화를 골라잡은 게 이상할 게 전혀 없을 정도다.
 영화는 일본 영화사가 투자사로 참여한 만큼 일부 캐릭터들이 일본인으로 바뀌었을 뿐 대체로 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만 개별 인물의 심리 묘사보다는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이들이 빚어내는 사회의 혼란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영 시간 중 비중이 큰 부분 역시 인물들이 눈이 멀어 가는 소설의 초반보다 수용소 내외부의 혼란상을 담은 중후반이다.
 인물들이 수용소에 하나 둘 모이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의 비중이 작아져 인물에 대해 감정 이입을 할 여유가 없이 줄거리가 전개되는 셈이다. 그 자리는 수용소 내부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극단적으로 부각되는 장면이나 아수라장에 빠진 수용소 밖 세상의 스펙터클이 차지했다.
 차가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 운전하던 한 남성(이세야 유스케)이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하며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백색 실명’ 상태가 된 것이다.
 남자를 돕겠다는 또 다른 남성은 그의 차를 가지고 도망가지만 조만간 같은 실명 상태가 되고 남자의 아내(기무라 요시노), 이들이 찾는 안과 의사(마크 러팔로),안과에 있던 환자들이 차례로 눈이 멀게 된다.
 정부는 이들을 수용소에 격리시키고 안과 의사의 부인(줄리안 무어)은 남편과 함께 수용소에 들어간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먼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수용소에 사람들이 가득차며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심지어 보급 식량을 놓고 권력 투쟁까지 벌어진다.
 수용소에서 눈먼 사람들은 서로를 싸우고 죽이기까지 하며 군인들은 이들이 수용소 밖을 나오지 못하게 총을 겨눈다. 결국 수용소 내부의 혼란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 의사의 부인까지 피해자로 만들어간다.
 청소년관람불가. 
 


 
추천비디오  `향수’
 
여인의 향기로 탄생시킨 치명적인`향수’
 
 

 
  1985년 출간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베스트셀러 `향수’가 지난해 3월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에서 개봉했었다.
소설`향수’는 `콘트라베이스’ `좀머씨 이야기’ 등 인간의 고독과 존재감을 독특한 접근으로 풀어내는 쥐스킨트의 대표작 중 하나.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더 음산한 분위기다. 향기 자체의 묘사에 공을 들였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과정에 집중했다. 또 파리 어시장부터 훑는 배경은 향기로운 향취보다는 역겨운 냄새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한 번쯤 보고 느낄 만하다. 한 천재적인 인간(천재성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의 집착이 가져온 크나큰 불행을 일반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세상이 결코 평범한 이들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니. 소설에 대한 빚을 갚기에 충분한 영상이 담겨 있으며 소설만큼이나 간결한 문체가 영화에도 통용됐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벤 위쇼)는 파리 어시장의 버려진 내장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태어난다. 그의 첫 울음은 영아를 유기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참담한 생활을 해야 하는 고아원에서도 그의 목숨은 질기게 버텨나간다.
 그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건 냄새.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냄새를 맡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5년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가죽공장에서도 삐쩍 마른 몸으로 버티는 그르누이는 어느 날 배달을 나갔다 그를 온통 사로잡는 미묘한 향기를 맡게 된다. 그 향기를 따라가 보니 싱그러운 여인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그는 뜻하지 않게 그 여자를 죽이고 난 후 그 여자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다.
 그르누이는 퇴락한 향수 제조자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를 찾아가 당시 유행하던 `사랑과 영혼’이라는 향수보다 더 뛰어난 향의 조합을 이룬 향수를 만들어주는 대신 향수 제조법을 전수받는다.
 발디니에게서 천상의 향수에 대해 듣는다. 파라오의 무덤 속 항아리를 여는 순간, 그 미묘하고도 강력한 향기가 퍼져나와 잠시라도 그 향기를 맡는 모든 사람들을 파라다이스로 데려다주는 향수다.
 그 향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의 원산지인 그라스 지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희한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모두 머리카락이 잘린 채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것. 그라스의 거상 안토인 리치스(앨런 릭맨)는 이 해괴한 살인마가 마지막에 자신의 아름다운 딸 로라(레이첼 허드 우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대사가 거의 없는 그르누이 역의 벤 위쇼는 영화의 분위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아떨어진다. 걸음걸이, 눈으로 표현하는 표정과 대사 등이 완숙하면서도 풋풋함을 잃지 않았다. 또한 마지막 반전에서 등장하는 군중신은 그 자체로 숨을 죽이게 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남현정기자 nhj@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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