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은 21세기 도심의 難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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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은 21세기 도심의 難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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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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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과 철거민은 원수아닌 형제와 이웃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얻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07년 하루 약 33명꼴로 자살함으로써 우리나라 자살률(10만 명당 자살하는 사람 수)은 24.8명으로 집계됐다. OECD국가 중 1위고, 미국 자살률의 두 배가 넘는다. 자살의 가장 큰 동기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경제가 더 나빠지면 자살하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작년 인기 탤런트 안재환 씨가 자살해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 사건이 잊혀질 즈음 배우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 안 씨의 경우 사채업자 협박이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또 한 번 놀랐다. 사채업자의 고리대금과 빚 독촉에 몰려 자살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던 터에, 그의 자살로 사채업의 비리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채업은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정상적으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사업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사채업하면 살인적 고리대금이 떠오른다. 고리대금과 관련된 폭력이 난무하고 비리들이 빈발하자 사채업 건전화를 유도하기 위해 2006년 대출이자율을 연 66%로 제한했지만, 법적으로 등록된 사채업에 해당하는 얘기일 뿐 사채업의 폭리행위는 여전히 법 밖에 있다.
 10일에 10%의 이자가 붙는 살인적 사채를 예로 들어보자. 10일에 10%면 하루 1%요, 일 년이면 365%다. 사채업자로부터 1000만 원을 빌렸다 치자. 10일마다 이자만 100만 원이다. 한 번이라도 연체 하면 밀린 이자가 원금에 포함되면서 빚이 불어나고 고율의 이자율이 적용된다. 3개월간 대여섯 번 연체하면 원금이 2000만 원으로 불어나고, 10일마다 내는 이자는 200만 원이다. 계속 이자를 내지 못하면 애초 1000만 원의 빚이 7개월 후 5000만 원을 넘는다. 사채업자의 박해와 폭력에 시달리며 결국 자살소동까지 벌어지게 된다.
 대학병원 화장실에 가면, 장기를 팔겠다는 쪽지가 보인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몸의 일부를 팔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40여 년 전 가난했을 때 피를 팔아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병원 앞에 장사진을 쳤다. 피 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고 자리다툼까지 벌어졌다. 그 사람들은 죽지 못해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이라지만 몸을 팔고, 장기를 팔고, 자식을 파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다. 특히, 생계에 직결된 거래 중에 강요된 거래가 많다. 성매매 행위가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입에 풀칠하기 위한 강요된 선택이며, 생계비 이하의 비참한 노동 역시 강요된 거래다. 사채업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사채업자들에게 혼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간적 모욕과 인간성 상실을 호소한다.
 설을 1주일 여 앞두고 발생한 용산 철거민참사를 놓고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철거민의 극한투쟁과 경찰의 강제진압이 불법이었는지 아닌지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철거민들을 그런 극한투쟁으로 몰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정치권, 특히 여권은 별로 관심 없다. 불법인지 합법인지 따지기에 앞서서 그렇게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극한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를 가슴 아파하고 문제 삼는 태도가 아쉽다. 철거민이나 경찰이나 서로 역지사지 해야한다. 이들은 이웃이거나 형제일 뿐 적이 아니지 않은가.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 실업이 늘어나고 절망적 상황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법질서의 확립은 그 다음의 일이다.
 여권의 정치가들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 미국 뉴딜정책의 핵심이 공공토목사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황 타개를 위해서 루즈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역점을 둔 사업은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이었다. 사회보장제도는 미국인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지만, 루트벨트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으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흔히 스페인의 투우가 순전히 대중의 오락을 위해서 만들어진 경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래 투우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구제하기 위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돈을 모으기 위해서 고안된 일종의 모금방법이었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나누고 보듬어야 한다. 그건 화염병도 아니고 컨테이너 진압도 아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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