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비리수사가 `공안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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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비리수사가 `공안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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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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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윤 환 (칼럼니스트)
 

 2003년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2002년 대통령선거자금 수사가 시작됐다. 대검 중수부는 2004년 5월부터 장장 9개월 동안 노무현 민주당,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불법자금을 샅샅이 뒤졌다.
 수사 결과 한나라당은 `차떼기’ 오명을 뒤집어 썼다. 이회창 후보 진영이 거둬들인 불법 자금이 총 700여억 원이고, 이 가운데 570억 원을 트럭 째 차떼기했으니 두고두고 비난받아 마땅했다. 한나라당은 2004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 일환으로 대선 때 쓰고 남은 138억 원을 국고에 반납했고, 시가 2000억 원의 천안연수원도 헌납했다. 여의도의 중앙당사도 비우고 천막당사로 옮겼다.
 검찰은 노무현 후보 불법자금에 대해서도 일단 핵심을 관통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긴 했다. 그러나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책임지겠다”는 노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 샛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송광호 변호사는 당시를 회고하며 “노 후보 불법자금의 한나라당의 10분의 2나 10분의 3쯤 됐다”고 실토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삼성은 2002년 대선 때 800억 원대의 무기명 채권을 구입했다. 이 가운데 300억 원은 한나라당, 15억 원은 노 후보 측근 안희정 씨에게 제공했다. 나머지 400억 원대 채권 행방은 묘연하다. 이 돈이 `노무현 당선 축하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난무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수사에서 비켜갔다.
 노 정권에 앞서 김대중 정권은 권력을 잡자마자 이회창 후보의 1997년 대선 불법자금을 후려쳐 `세풍’을 만들어 냈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총풍’까지 동원했다. 한나라당은 쑥대밭이 됐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는 1997년 DJP 연합을 꾀하면서 한나라당보다 5년 앞서 `차떼기’를 `창조’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당시 자민련 선대본부장이던 강창희 전 의원은 “동교동에서 승용차에 1만 원 짜리 현금을 모두 80억 원 실어 날랐다”고 폭했다. 그는 “돈이 너무 무거워 차가 주저앉기까지 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박연차 수사가 한창이다. 여야 정치인이 골고루 섞였지만 주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일가, 그리고 `노빠’들이다. 박 회장이 노의 `재정적 후견인’ 역할을 해왔고, 386들의 `금고’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박연차 수사를 `공안통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4월 국회에서도 검찰수사를 각종 법안과 연계시킬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박연차 특검과 국정조사 요구로 맞설 태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상대 후보의 대선자금을 깠다면, 박연차 비리는 구 정권의 불법정치자금 및 로비자금을 깨부수는 수사다. 박 회장이 해외법인을 통해 탈세한 달러를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과 일가, 친척에게 뿌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직 대통령 일가가 `가문의 치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일가의 엄청난 비리를 밝혀내는 게 `공안통치`라면 과거 전두환, 노태우 비리도 수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인가?
 정권이 바뀌면 `배에 낀’ 삼겹살을 빼야 한다. 부정한 돈을 받아 살찐 배는 본인 자력으로는 감량이 불가능하다. 본인들도 비리에 얽힌 돈을 챙겼을 때는 언젠가 검찰의 사정 도마에 오를 것을 예감했어야 했다. 검찰 수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권 비리가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DJ 식 차떼기’가 무사히 넘어갔고, 노벨평화상 로비 의혹과 벤처 비리 등이 덮어진 것을 감안하면 여야 정권교체는 필요한 것이다. 민주당은 박연차 수사가 정권교체에 따른 `통과의례’임을 인정해야 한다. `공안통치’ 주장에 국민들이 허리를 잡는다. 또 노 정권이 전임 DJ 정권 비리를 제대로 척결하지 않고 야당만 때려잡는 바람에 권력 전체가 부정에 둔감해진 결과가 박연차 비리로 나타났음도 인정해야 한다.
 강창희 전 의원 회고록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국민회의측(DJ)이 준돈은 모두 1만 원권 지폐였는데 전부 헌 돈이었고 은행 띠지가 아닌 고무줄로 묶여 있었으며 100장짜리라고 묶인 돈이 거의 다 한두 장씩 모자랐다”고 했다. 이렇게 집권한 게 DJP 연합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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