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절 한 시인은 인터뷰 도중 ‘인생에서 후회되는 건 오십이 올 것을 걱정하면서 사십을 보내버린 것’이라고 말했지. 막 마흔을 앞뒀던 나는 걱정하지도, 딱히 즐긴 것도 아닌 채 어영부영 십 년이 흘렀어. 게으른 천성 덕인지 숫자 바뀌는 게 애달프진 않아. 솔직히 말하면 숫자는 정말이지 육신이 일깨워주는 호르몬의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지인들이 조증과 울증의 쌍곡선을 넘나들고, 통증으로 골격의 위치를 알게 됐다고 자조해도 내게 갱년기란 아직은 남의 일이었어. 그러던 어느 불면의 밤에 깨달았어. ‘아, 내 중추신경계는 호르몬에 의해 잠식되기 시작했구나.’ 말인즉 나의 소중한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서서히 그리고 탈탈 털리게 될 거라는 걸 뜻했지. 이런 식이야. 수십 년을 써온 팔다리인데 동작을 잃어버린 듯 주춤거리고, 전에 없던 행동과 표정이 튀어나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후천적 자아를 타고난 성격과 습성으로 이뤄진 본래적 자아가 이겨 먹기 시작한 거지.
호르몬의 소멸절차가 요란해지면 질수록 피부와 관절은 엿가락처럼 늘어나다가 구멍도 송송 뚫리겠지. 바닥난 자존감과 관조의 탈을 쓴 우울감을 머리에 이고 긴 어둠을 건너야 할지도 몰라. 자못 파괴적이기까지 할 노화의 징후들이 나를 괴롭힐 테고 우리는 생리적 존재라는 울타리에서 한 끗도 벗어날 수 없어. 마찰하면서 성장하고 부서지면서 소멸해가는 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숙명이니까.
그럼에도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줄어드는 머리숱은 못 받아들이는 게 인간이지. 갱년기가 악화(?)하면 나는 ‘반드시’를 기억할 참이야. 삶의 규칙성은 예외가 없으니 소멸과정도 반드시 끝이 있지 않겠니? 나의 목표인 ‘천진하고 자유로운 요가 할매’가 되기 위해 호르몬의 난동에 맞서 씩씩하게 앞날을 준비할 거야. 요새 여기저기에 자꾸 얘기하고 다니는 중이야. 그래야 비슷하게라도 되어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그나저나 얻다 자꾸 다짐하고 인정을 바라는 것도 징후라던데, 나 어느덧 갱년기 한복판에 와있는 거 아녀?! 안은영 작가. 기자에서 전업작가로 전향해 여기저기 뼈때리며 다니는 프로훈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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